[지금 서점은] 베스트셀러 가판은 왜 여성 작가들이 차지했나?

김미경·김금희·정세랑 등 여류작가 소설 및 에세이 인기

권유리 기자 승인 2021.02.15 09:30 | 최종 수정 2021.02.14 10:39 의견 0

정부의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인해 직계가족도 5인 이상 모일 수 없었던 2021년 설 연휴 세 번째날. 서점은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두기 위해 모임을 자제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집 안에서의 고립된 시간이 답답하기라도 한 듯 서점을 찾은 독서가들은 저마다 책 쇼핑에 바쁘다.

2021년 2월 둘째주 베스트셀러 가판의 대부분은 역시 ‘돈’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이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광고의 8원칙’ ‘돈의 시나리오’ 등의 실용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를 예감한 듯 ‘2030 축의 전환’ ‘공정하다는 착각’ 등의 책도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순위 안에 들지 못한 여성 작가들의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인기 강사 김미경의 ‘리부트’를 비롯해 넷플릭스 드라마 동명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작가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등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를 여성 작가들의 책이 베스트셀러 가판에 즐비하다는 점이 이채롭다. 또한 각자의 문제의식을 저마다의 목소리로, 각자의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내심 반갑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삶을 뒤흔들었나요?…‘김미경의 리부트’

김미경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강사다. 28년 동안 강연장을 누비며 수백만 청중의 마음을 휘어잡아온 그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입이 0원이 됐을 정도로 감염병의 위력은 파괴적이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코로나 이후 변화를 공부하고 연구한 끝에 자신만의 생존 공식을 찾아낸 김미경은 그 공식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이 책을 쓰면서 깨달은 생존 공식을 자신에게 적용해 오프라인 강연장을 과감하게 떠나 온라인 교육 사업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뤄내며, 직원 60명을 둔 스타트업 CEO로 거듭나는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책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변화에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다. 그녀 스스로 바이러스를 향한 빠른 추격을 증명해낸 셈이다. 아직 코로나에 발이 묶여 있다면, 직장을 잃을지 몰라 불안하다면, 가게 문을 닫을지 고민하고 있다면, 위기를 넘어서는 일자리와 비즈니스의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 이 책을 권한다.


맑고 투명한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세요…‘쇼코의 미소’

2013년 겨울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 그 작품으로 다음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은영이 써내려간 7편의 작품을 수록한 소설집이다. 사람의 마음이 흘러갈 수 있는 정밀한 물매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들을 바로 그 사람의 자리로 이끄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성장의 문턱을 통과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표제작 ‘쇼코의 미소’, 베트남전쟁으로 가까운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응웬 아줌마와 나와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씬짜오, 씬짜오’,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케냐 출신의 청년 한지와 만나게 된 영주의 이야기를 담은 ‘한지와 영주’ 등 맑고 투명한 그 목소리로 타박타박 담담하게 이어지는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 나쁜 것은 나쁜 것일 뿐…‘복자에게’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나쁜 것 나름대로의 변명과 미화는 필요치 않다. 작가 김금희는 글을 통해 “나쁨에 대해 더 이상 아무것도 미화하지 않겠다”고. 이 소설은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산재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그밖에도 제주4.3사건, 국정농단 사건, 판사 블랙리스트 파문 등 다양한 사회적·역사적 문제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작가는 현실의 나쁨에 대해 냉철한 시선을 던진다.

이 소설은 1999년 초봄, 야무진 열세 살 초등학생 이영초롱이 남동생 대신 제주 본섬에서도 한 번 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고리섬의 고모에게 맡겨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영초롱은 자신이 서울에 남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적은 제안서까지 써서 부모에게 호소해보지만 절망적인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고고리섬에서 침울한 나날을 보내던 이영초롱은 어느 날 섬 둘레를 혼자 걷다가 우연히 또래 여자아이 복자와 마주친다. 당차고 무람없는 성격을 지닌 복자는 섬에 왔으면 할망신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며 이영초롱을 할망당으로 안내한다.


▲ 시대는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나?…‘시선으로부터’

시대는 그 모양과 시간을 달리하면서도 얼마나 일관되게 여성에게 폭력적이었나를 여실히 보여주는 ‘시선으로부터’가 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독자 곁에 성큼 다가온 정세랑 작가의 손끝에서 세상에 나왔다.

이 소설은 시대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순종하지 않았던 심시선과 그에게서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 나온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한다.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가 괴롭힘을 당했지만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경아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뒤따라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 여성을 향한 혐오는 얼마나 추악한가…‘화이트호스’

작가는 긴장감 넘치는 서사 속에 여성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폭력의 문제를 절묘하게 녹여내며 다른 누구도 아닌 강화길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제 강화길은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위협뿐만 아니라 소문과 험담, 부당한 인식과 관습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성을 교묘하게 억압하는 거대한 구조를 파헤친다. 마치 유령처럼 설핏 드러났다가 모습을 감추는 이러한 구조를 강화길의 인물들이 감지하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른 질감의 서스펜스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 ‘화이트 호스White Horse’에서 강화길은 여성을 구속하는 말들을 자신만의 의미로 다시 쓰겠다는 작가로서의 다짐을 드러낸다. ‘백마 탄 왕자’를 연상시키는 이 단편의 제목은 G. K. 체스터턴의 시집에 등장하는 시어이자, 밥 딜런과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신의 음악에 활용한 상징이기도 하다. 이 단어가 강화길 소설에 이르러서는 어떤 의미로 변모할까.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부단히 자기 갱신한 끝에 한국 여성 스릴러를 대표하는 작가가 된 강화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만드는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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