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읽다] 도선우, 뒤늦게 꽃피운 운명적 재능

이지영 기자 승인 2021.08.31 10:10 의견 0
사진=나무옆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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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혜성처럼 등장한 소설가가 있다. 40대 문학중년, 사업가 출신, 갑작스러운 진로변경, 그리고 돌직구이면서도 묵직하기 그지없는 작품으로 범상치 않은 필력을 보여준 도선우 작가다.

도선우 작가는 소설과 거리가 멀었던 삶을 살았지만 지난 2016년 제 2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등단 시점으로부터 이제 겨우 4년째의 해를 맞지만 ‘저스티스 맨’으로도 제 13회 세계문학상을 받는 등 강렬한 등장과 작품으로 독자와 평단의 뇌리에 각인된 작가로 손꼽힌다. 그의 독창적 작품 세계는 뒤늦게 열렸지만 이 40대 중년 문학가가 앞으로 펼쳐나갈 세상은 그가 살아온 세월과 경험만큼 깊이 있고, 그간 다른 길을 걸었기에 더 독특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 치열하게, 사업가에서 작가로

재야의 숨은 고수였다고 평가받는 도선우 작가는 서른 일곱 살까지 사업가로 살았다.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사람이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할 만큼 글쓰기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삶과 인간사에 대한 통찰에 몰두하기보다 경쟁과 성공의 양날 위에서 춤을 추며 살았던 도선우 작가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소설보단 시사 주간지가 최고라 여기며 살아오던 중 서른 일곱에 이 책을 읽었고 그대로 250여 권의 도서를 섭렵했다. 문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뎠고 문자 그대로 미친 듯이 문학작품들을 탐독하던 그는 결국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갖기에 이른다. 사업가들이 흔히 내놓는 자서전이나 자기개발서, 입문하기 가장 쉽다고 알려진 에세이도 아니었다. 도선우 작가는 오직 문학작품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소설 쓰기에 몰두했다. 회사일과 병행하며 자신의 작품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는 북 DB와 인터뷰에서 데뷔작인 ‘스파링’을 쓰던 8개월이 진정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데뷔작 ‘스파링’은 미국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귀를 물어뜯은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고아 출신인 장태주란 캐릭터로 풀어낸 작품이다. 돈과 권력, 힘에 좌우되는 세상의 비열함과 인간의 폭력성을 함께 다루며 독자들에게 ‘스트레이트’를 날린 작품으로 평가되는데 주목할 점은 중년의 신인작가가 표현해 낸 인간과 세상의 면면이다. 그는 세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과 비열함의 종류와 결을 세심하게 다루며 재미까지 챙겼다.

사진=나무옆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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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이 그간 응집됐던 그만의 유머와 에너지로 터져나온 작품이라면 ‘저스티스맨’은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추리소설 기법으로 속도감과 흡입력을 더한 작품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벌어진 일곱 건의 살인사건은 피해자들 간 접점도, 살해동기도 알 수 없어 국민의 불안감을 더한다. 이 가운데 저스티스맨이라는 네티즌이 자료와 논리를 동원한 추리를 시작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끈다. 이 같은 내용을 통해 도선우 작가는 인터넷 시대 폭력의 양상, 여론의 변화, 논쟁과 설전으로 보여주는 소수와 다수의 이질감 및 이율배반적 행위 등을 신랄하게 담아낸다. 비열한 폭력이 끊이지 않는 시대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개인의 폭력에 관해 다루는 동시에 인간애에 대한 갈망을 품어내며 세계문학상 대상을 거머쥔다.

■ "살아있는 동안 뭐든 조금은 바꿔놓고 죽겠다"는 의지

글을 쓰는 어떤 순간, 자신이 세상의 창조주가 아닌 등장인물 간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는 도선우 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품 안에 폭력과 권력, 정의에 대한 수많은 고민들을 담아내며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세상을 직시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든다. 더욱이 스스로가 ‘나쁜놈’이었기에 신랄하게 세상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는 북DB와 인터뷰 당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힘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나쁜 놈들이라면서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2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체화돼 있던 것이라 언제라도 그런 인물을 꺼내서 쓸 수 있다. 속죄의식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가 한 말은 ‘너무 부당한 세계에서 너무 당당하게 살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작가로서 부당한 세상과 그 안에서 꽃피는 정의, 인간애를 갈망하게 만드는 작품을 쓰는 이유 역시 “살아있는 동안 뭐든 조금은 바꿔놓고 죽어야”한다는 열망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또 한번 성장했다. ‘모조사회’를 통해 그는 대재난 후 300년,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단 두 개의 대지인 ‘복지 자본 공통체’와 ‘모조사회’를 내세워 미래의 이야기를 다룬다. 세 번째 작품이 SF소설 도전인 셈이다. 장르와 스타일 변주 사이에서 그는 ‘스파링’과 ‘저스티스맨’에서 제기했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복지 자본 공동체’를 내세우며 또 한번 독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의 불행, 그 불행을 야기한 구조적 문제, 그 구조대로 굴러가는 사회,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대안까지. 도선우 작가는 이 문제들을 재미있는 스토리에 담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써나가겠다는 그의 다짐이 반갑고 고맙다. ‘진짜 작가’를 꿈꾸며 하루 네 시간씩은 반드시 글을 쓴다는 그가 부지런히 지어나갈 새로운 세계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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