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을 말하다] 로마제국의 군사공학에서 현대 사이버 전쟁까지… ‘전쟁은 과학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안소정 기자 승인 2021.01.05 10:00 | 최종 수정 2021.01.05 19:25 의견 0

인류의 역사는 투쟁과 전쟁의 역사이다. 그리고 전쟁의 승패는 기술의 우월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 책은 고대의 전쟁에서부터 현대의 사이버전까지 과학이 어떻게 전쟁에 이용되어왔고, 또 전쟁을 치르는 동안 과학은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는가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페니실린의 대량생산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최초로 페니실린을 발견한 후, 1939년 옥스퍼드 대학의 플로리 팀이 페니실린 정제에 성공함으로써 항생제의 시대를 열었다.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플로리는 치료적 용도로 적정량을 공급하려면 대량생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시 상황인 영국에서는 모든 화학공장이 전쟁물자 생산에 동원되어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이 불가능해지자 플로리는 미국으로 건너가 화이자 등 제약회사들과 협력한다. 때마침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미국이 참전하게 되고, 미국 전시생산국의 계획하에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에 돌입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페니실린은 부상당한 연합군 병사의 10~15%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고,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탁월한 무기 디자이너이자 군사 엔지니어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19세기 다빈치의 고문서(codex)가 발견됨으로써 시대를 앞선 과학과 공학의 전설임이 밝혀졌다.

다빈치가 태어난 15세기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서로 동맹과 전쟁 관계에 있었다. 그중 군사적 분쟁의 중심지였던 밀라노 공국은 군사 요새를 설계할 기술자들을 필요로 했다. 다빈치는 밀라노 공국을 지배하던 스포르차 공작에게 군사 엔지니어로서 자신의 능력 10가지를 소개하는 자기소개서를 보내는데, 거기에는 자신의 예술적 천재성에 대해서는 끝에 가서 단 한줄 언급할 뿐이었다.

자신만만한 자소서 덕분이었는지 다빈치는 스포르차 가문의 군사 고문으로 고용되어 10년 간 일하게 된다. 다빈치는 밀라노에서 군사 기술자로 일하면서 탱크, 투석기, 잠수함, 기관총 및 다양한 무기와 같은 전쟁 장비를 연구하고 설계했다. 현대 공학의 관점에서 볼 때 최초의 엔지니어인 다빈치의 주요 발명품 중에는 비행기계, 잠수복, 장갑차, 기관총, 인간형 로봇 등 현대에 와서야 실현되고 있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이 황당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어느 것도 채택되지 않았다. 단지 500년이 지난 현대에 와서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을 증명할 뿐이다.

■ 미국은 왜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원자탄을 떨어뜨렸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뇌출혈로 사망하자,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1945년 4월 24일 트루먼은 맨해튼 프로젝트(핵무기 개발계획)에 대해 상세한 보고를 받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실험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달 5월 7일 독일이 항복했지만 태평양 섬들에서는 여전히 일본군이 일억옥쇄(一億玉碎)를 외치며 저항하고 있었다. 독일이 항복한 이후에도 핵무기 개발은 계속되었고, 1945년 7월 16일 트루먼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에 대해 보고를 받았을 때 그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마침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트루먼의 개인적, 정치적 동기도 작용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20억 달러(현재 가치로 27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도 전쟁에 사용하지 못해 수많은 미국 군인들을 죽게 만든다면 1948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할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일부 학자들은 독일이 아닌 일본에 원자탄을 떨어뜨린 것은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정보통신 시대의 사이버 전쟁

2007년 9월 이스라엘 공군이 시리아의 핵시설을 파괴한 일명 ‘오차드 작전(Operation Orchard)’을 성공시킴으로써, 사이버 전쟁의 개척자로서 능력을 입증했다.

2006년 12월, 시리아 원자력위원회 원장 이브라힘 오스만이 런던 켄싱턴의 호텔에 가명으로 머물다 잠깐 쇼핑을 나간 사이 이스라엘 정보국 요원이 그의 노트북에 트로이목마를 설치했다. 노트북에는 시리아의 알키바 핵시설의 설계도 수백 장이 들어 있었다. 2007년 이스라엘의 공습이 있을 때 시리아는 방해 전자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최첨단 러시아제 레이더망을 갖추고 있었고,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해 핵시설을 보호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스라엘 공격기들은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가 아닌데도 시리아 방공망은 작동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 공군 전자전 시스템이 시리아의 대공 시스템을 장악하여 가짜 하늘 화면을 보여주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전투기가 시리아까지 날아가 목표물을 폭파하고 다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유항 , 황진명 지음 | 사과나무 | 2021년 01월 07일 출간

저작권자 ⓒ 리드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