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작가] 강이슬 작가 “글 쓰고 싶은 이들에 꼭 권하고 싶은 브런치”

신리비 기자 승인 2022.01.25 10:30 의견 0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20대의 모습은 어떨까. 급성장하는 경제 제일시대에서 오직 나라의 경제 성장과 가정의 풍족을 위해 살아왔다 자부하는 기성세대는 요즘의 젊은이들이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부족할 것 없이 자라서 별다른 꿈도 꾸지 못한 채 부모 재산을 축내며 어영부영 청춘을 보낸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정말일까? 요즘 20대는 꿈도 없고 끈기가 없어 포기하기 바빠 N포를 말하고 어려움이란 겪어보지도 못해서 작은 시련에도 금방 주저앉고 마는 걸까? 그런 생각으로 캥거루족으로 부모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정녕 많은 걸까?

물론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안 느끼한 산문집’을 펴낸 강이슬 작가에게 그런 지적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스물 아홉, 꽃답고 꽃다운 나이의 강 작가는 방송작가라는 꿈 하나를 위해 서울살이를 시작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생활을 꾸려나가고 싶어 부모에게 손 한번 벌리지 않은 채 고난을 껴안았다. 유명한 예능프로그램을 거쳤지만 막내 작가인 탓에 1년 연봉이 1000만원도 되지 않아 친구에 기대고 주린 배를 꿈으로 달랬다. 반지하에서 시작해 옥탑방에 살고 있지만 방 곳곳 바닥이 울퉁불퉁해 수평이 맞아야 하는 온수매트 하나 제대로 가동시키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 그를 두고 혹자는 서울에 미쳤다고도 하고 바보같은 짓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방송작가의 형편은 워라밸은 커녕 일상조차 챙길 수 없는 박봉이며, 부모 손을 빌리지 않고 시작하는 서울살이는 웬만한 의지가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행복했기에 ‘버텼다’고 말하는 강 작가의 마음과 일상들이 ‘안 느끼한 산문집’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다.

모두가 행복하다는 크리스마스 전야, 24일에 만난 강 작가의 얼굴은 상상했던 것보다 앳돼 보였다. 그는 카카오 창장 플랫폼 중 하나인 브런치 6회 대상 수상자이기도 한데, 이번 내놓은 책이 처녀작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풀어내는 방식은 여느 기성작가 못지 않게 재기발랄하고 깊이가 있다.

■ 이상적 이야기보다 담백한 이야기로 써내려간 ‘안 느끼한 산문집’

하다못해 책 표지 날개에 적힌 짤막한 자기소개마저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어제도 오늘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겠지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는 짧은 소개만으로도 강 작가의 통통 튀는 매력과 긍정적인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자기 소개를 부탁했더니 의외로 평범한 답변이 돌아온다. “양띠고요, ‘안느끼한 산문집’을 썼습니다. 책을 내는 게 죽기 전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데 이뤘고 ‘놀라운 토요일’ 작가로 참여하고 있고 ‘인생술집’과 ‘SNL코리아’에 참여했어요”

‘안 느끼한 산문집’은 지금껏 나왔던 에세이들이 오글거리고 느끼한 문장으로 교훈이나 멋드러진 사유를 전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은 제목이다. 스스로는 자신이 쓴 글들이 정말 ‘안 느끼하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지금 봤을 땐 부끄럽지 않지만 시간을 믿을 수는 없어요”라고 말한다. 예전 눈물을 쏟으며 썼던 싸이월드 홈피글들이 작금에 와 부끄러운 흔적이 된 것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 부끄러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교 시절부터 수필을 썼다는 강 작가는 당시 썼던 글들을 지금 볼 때마다 ‘이렇게 별로였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십대 시절 썼던 글들에 국어 교사가 첨삭해주는 걸 보며 ‘내가 더 나은데’라고 자기 글에 도취되기도 했던 그는 최근 책을 내고 고향집에 가서 다시 들춰보고서야 ‘선생님이 이래서 지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먼 훗날 작가로서 모자란 부분을 발견하고 부끄러울 순 있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다만 독자 후기에서 “간간이 느끼했다”는 평을 보곤 하는데 강 작가는 이에 대해 “아마 사랑을 말하지 않는 시대라서 그런 것 같아요”라며 “요즘 다수 사람들이 사랑을 사랑한다 말하고 더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서 그런 부분을 오글거리며 보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이 시대의 사랑꾼(웃음)으로서 사랑을 말하는 게 당연해진다면 그게 더 살기 편해지는 것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라고 더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독자로서 말을 보태자면 ‘안 느끼한 산문집’은 실제로 느끼하지 않다. 갖은 고난과 유년의 기억과 사랑에 대한 추억들이 버무려진 글들은 담백하게 써내려갔음에도 읽는 이를 울컥하게 하고 킥킥대게 만들기도 한다. ‘안 느끼한 산문집’이 독자와 대면하는 첫 글이 성인방송에서 일한 경험인 것도 그가 느끼하지 않으려 애썼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첫 경험은 뭔지, 좋아하는 체위는 뭔지 논의하는 성인방송TV의 회의에서 큰 충격을 받았지만 도리어 감추고 내외하며 그것이 정상인 척 하는 사회를 꼬집는 그의 글은 보통의 20대가 갖기 힘든 내공을 짐작케 할 정도다.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 왜 그렇게 가난해야 했을까?

다만 그의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까지 가난하게 살아야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방송작가의 열악한 현실이야 익히 듣고 봐왔기에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했지만 그가 겪은 세달 40만원 월급,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봉급, 목욕탕도 가지 못한 채 24시간 휴대전화를 붙들고 살면서 맥주값도 아까워 소주를 마신 일 등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방에서 나고 자라 상경해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온 강 작가는 기자의 말에 “친구들과 모이면 가난 배틀을 하는 데요?”라고 되묻는다.

“상경해서 자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겐 흔한 일 같아요. 친구들과 만나면 공감대가 많은데 ‘내가 더 힘들었어’ ‘그 정도면 많이 받았네’라며 가난배틀을 하곤 해요. 얘기하다 보면 다 도토리 키재기구나 싶기도 하고요. 이렇게까지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뭘까 하다가도 ‘하고 싶은 게 있고 꿈이 있어’라는 마음으로 버텼죠. 특히 내 경우는 방송작가 일이 너무 재밌어서 분할 정도였어요. 3달 동안 일해서 40만원을 받았는데 긍정적인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현타(현자타임, 현실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가 오더라고요. 그렇다고 내가 못 번다고 해서 ‘힘들지’ ‘너 정말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도 없어요. 원래 그렇다며 버텨야 이기는 거라고 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물에서 녹이 나오고 공과금이 밀리고 쌀이 떨어지는 순간들이 비일비재했지만 그래도 고향으로 내려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분노하며 나중에 훌륭한 작가가 되면 버티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말 대신 잘못된 구조를 말해주고 공감하며 후배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이 되어 줘야지 생각했죠”

남들은 이해못할 일이었다. 그래도 강 작가에겐 방송작가로서의 뿌듯함이 오직 하나의 버팀목이었다. 공채 모집으로 하루만에 급하게 콩트를 써 채용된 후 ‘SNL코리아’ 생방 때마다 관객 반응을 보며 느꼈던 희열과 보람은 마치 “마약같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스스로 멋져보인 그 순간에 취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 때의 벅차오르던 그 마음이 한달 10만원 받고, 24시간 휴대전화를 붙들고 살아야 하는 생활 속에서도 방송작가란 직업을 놓을 수 없는 힘이었다.

본인이 좋아서, 자신의 꿈을 부모에게 손 빌리고 싶지 않아서 마냥 좋은 척 했다는 강 작가다. 늘 직업에 대해 좋은 얘기만 한 통에 그의 동생마저 이 업계에 뛰어들어 방송작가로 활동중이란다. 하물며 강 작가 부모는 딸의 팍팍한 현실보다는 빛이 비추는 세계만 듣고 봐왔기에 책을 읽고 나서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강 작가는 “사실 출간 후 부모님 반응이 가장 걱정이 됐어요”라며 “엄마 아빠가 가난했다, 힘들었다는 글을 보고선 ‘얼마나 힘들었니’라고 하기보단 ‘역시 너는 독하고 멘탈이 튼튼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쑥스러워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엄마 아빠가 미안해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책 나온 뒤에는 종종 ‘용돈 보내줄까’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다독인 인성, 단단한 뿌리에서 자란 강한 정신력

그의 책을 보다보면 아버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묻어난다. 종종 등장하는 어머니에 대한 애잔함과 애정도 느껴지지만 아버지는 애정보다 더 깊은 집착같은 게 묻어난다. 강 작가 스스로도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집착하는 스토킹 수준이었다”고 표현할 정도다. 심지어 장성하고 나서도 남자친구와 여행간다는 사실을 모친에게 비밀로 하고 아버지에게 털어놓을 정도로 막역하고 벽이 없는 사이다.

“아빠와 왜 사이가 좋을까 생각해본 적 있는데 아빠가 회사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가 계셨던 때가 사춘기라서였던 것 같아요. 더 애달팠고 보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죠. 특히 어릴 때부터 아빠가 첫딸인 날 어린아이 대하듯 하지 않고 성인처럼 대해주셨어요. 나를 데리고 술집에 가면 콜라 한잔 따라주고는 ‘너는 요즘 어떠니?’ ‘유치원에서 싫어하는 애가 있니?’이런 질문을 하시곤 무슨 말을 하면 ‘인간관계가 원래 그래. 나도 그랬어’라며 어른처럼 조곤조곤 대화해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아빠 친구분들도 나와 만나면 ‘이슬이 요즘 속상한 일 없니?’라고 물어보실 정도였죠. 내 이름도 아빠가 지어주셨어요. 사실 아빠 엄마 이름 중 한 글자씩 따서 태숙이가 될 뻔했거든요. 아빠가 친구와 술 한잔 하시다 ‘이슬이가 예쁘겠다’고 지어주신 걸로 알아요. 태숙이었으면 큰일날 뻔했죠(웃음)”

어린 딸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준 덕분일까. 그는 강인한 정신력과 긍정적 성격의 소유자로 자라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책의 1차 원고를 보냈을 땐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고 종이책으로 출간됐을 땐 자신의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큰 위로와 고마움을 얻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방송작가로 종횡무진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글이 없었다는 것에 헛헛해하다 우연한 기회에 들어간 창작 모임에서 브런치 글쓰기를 권유받고 쓰기 시작한 것이 독자의 공감과 호응으로 다가온 셈이다. ‘씀씀’이란 글모임이 강 작가의 작가 본능을 일깨웠고 그곳에서 알게 된 브런치가 요즘의 SNS 트렌드와 다른 긴 호흡의 글, 자신이 원하는 글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는 점이 강 작가에겐 큰 행운이었던 셈이다.

실제 그는 제 6회 브런치 대상을 수상하며 심사위원들로부터 “에세이 시장이 곧 어떻게 변할지 어렴풋이 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상을 받은 강 작가는 솔직하게 구독자 수나 이름있는 작가들의 명성이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던 브런치 심사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특히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 책을 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장치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사진=강이슬 작가 제공)

■ 글쓰고 싶은 이들에 꼭 권하고 싶은 ‘브런치’

“브런치 응모방법이 글 15편 정도를 쓰고 해시태그를 다는 것이었거든요. 당시 내 글 구독자가 100명도 안됐어요. 응모한 사람들 중 유명작가도 있고 1만 구독자를 거느린 분도 있어서 사실 ‘누가 글 하나하나 다 읽고 뽑아주겠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까맣게 잊고 살다가 발표 당일에 알고는 깜짝 놀랐죠. ‘이럴 수가 있나? 응모한 사람들의 글을 다 본 거야?’이런 마음이었어요. 그런 점도 좋았지만 브런치라는 플랫폼도 좋았어요. 10년간 갈증 속에서도 내 글을 쓰지 않은 건 긴 글을 써도 이걸 올릴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요즘 SNS들은 수필같은 긴 글을 올리면 보는 이도 오글거리고 올리는 사람도 민망해지거든요. 그런데 브런치는 긴 글을 올려도 보는 사람들이 반겨주고 서로 응원해주고 위안이 되는 분위기였어요. 끈기가 많은 편은 아닌데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이런 생각에 뿌듯하고 인정받는 느낌이었어요. 그 힘으로 썼고 쓰면서도 힐링하는 기분이었죠. 그런 점에서 브런치는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플랫폼이에요.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꼭 브런치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브런치를 통해 출간한 사람도 많고 출판인들도 브런치를 눈여겨보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브런치라는 새로운 플랫폼 덕에 강 작가에게도 새로운 길이 열렸다. 다만 강 작가는 방송작가일은 철저히 직업으로, 글작가는 ‘너무너무 좋아하는’ 취미로 남겨두고 싶다고 바람을 밝힌다. 글을 취미로 쓴다고?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강 작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압박을 받고 즐거워지지 않아 스트레스가 되면 글쓰기를 그만두게 될까봐 무서워요”라면서 “방송작가는 확실히 일의 개념이지만 글쓰기는 좋아하면서도 ‘언제까지 꼭 써야지’하는 기준을 두고 싶지 않아요. 시간이 날 때, 쓰고 싶어질 때 적절히 안배를 하면서 ‘너무너무 좋아하는 취미’로 남겨두고 싶어요”라고 설명한다. 결국 글쓰는 일이 정말 좋아서 앞으로도 쭉 좋아하는 일로 여기고 싶다는 바람인 셈이다.

어쩌면 벌써 다음 에세이 계약이 돼 있기에 더더욱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좋아하는 일로 여기자 다짐하는 마음가짐인지도 모른다. 그는 다음 책도 에세이라면서 “쥐어짜는 느낌이 아닌 편안한 글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두 번째 에세이의 목표를 세웠다.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로 그는 가난을 조금이나마 벗어났다.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작가 소개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는데 그 말처럼 자신의 가난과 일상과 사랑을 논한 책 덕분에 수평조차 맞지 않던 옥탑방에서 벗어나 이사를 가게 됐다고 한다. 이사할 집 방에 들어서는 순간 바닥이 너무 평평해서 놀랐다는 그의 동그란 눈동자를 보며 이제 그만 꿈을 좇다 동반하게 된 가난을 떨쳐도 되겠다는 안쓰러움과 대견함이 밀려왔다. 올해 첫 책으로 읽은 에세이 작가가 브런치 심사위원이었고 출판담당자였다는 신기한 인연에 ‘새해 첫 책’의 운을 믿겠다며 같은 작가의 두 번째 책을 2020년 첫 책으로 읽으려 아껴두고 있다는 그는 아직 순수한 20대 청춘이다. 매순간 통통 튀는 발언과 고난마저 추억으로 간직하는 이 발랄한 청춘은 언젠가 코미디 장르로도 독자와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앞날이 꽃길이기를, 부디 정형화된 작품에 갇히지 않고 더 자유롭게 뻗어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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