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리드] 1978년과 2019년, ‘난쏘공’과 ‘기생충’

신리비 기자 승인 2021.09.10 15:00 의견 0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은 불편한 영화다. 개봉관을 끝까지 붙잡고 천만관객을 모으긴 했지만, 현실을 가감없이 털어낸 내용으로 인해 관객들은 씁쓸해 했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과외 선생으로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담았다. 간단하게 스토리를 정리하면 반지하에 사는 기택네 가족이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 집에 빌붙어 사는 이야기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공간은 이 단순함에 무게를 더한다.

‘기생충’은 두 키워드로 영화 전반에 깔린 음습한 분위기를 전달했다. ‘반지하’ 그리고 ‘냄새’다. 영화 속 배경의 90% 이상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기생충’ 안에서 봉준호 감독은 계층이나 계급을 집안의 수직적 구조로 표현하려 했다. 때문에 계단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단서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만 있는 반지하라는 공간을 통해 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했다.

실제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반지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밖이 보이지만, 빛을 제대로 받는 것도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노출된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사람들이 신경 쓰지도 않는다. 영화는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전달한다. 반지하에 들어가는 순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인 셈이다. 여기에 ‘기생충’은 대저택 지하를 보여주며 더 깊숙이 들어간 사람들의 군상을 이야기한다.

지상과 반지하 그리고 지하로 나눠진 계급사회이긴 하지만, 계층간 이동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영화는 ‘냄새’의 존재를 투척한다. 반지하에 살기에 지워지지 않는 특유의 냄새는 계층간 보이지 않는 벽을 공고하게 만든다.

다시 언급하지만, 반지하네 집이 대저택에 빌붙어 산다는 단순한 설정은 계층, 계급, 불평등 등의 단어가 개입하면서는 사회를 압축시킨 설정으로 변한다. 철저하게 말이다.

사실 계층, 계급, 사회 불평등에 대해서 영화나 소설을 통해 언급된 것은 오래됐다. 그러나 ‘기생충’을 본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세대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책을 떠올리게 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말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쏘공’으로 불렸다. 단행본으로 묶인 조 작가의 연작소설을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한편의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1978년에 발간됐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 빈부격차를 이야기 한다.

소설은 난쟁이 가족이 사는 집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오면서 시작한다. 난쟁이 가족이 사는 곳은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이다. 그러나 난쟁이 가족들은 특별하지도 않았고, 낙원도 아니었으며 행복하지도 않았다. 소설 서두에서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는 난쟁이 자식의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그들은 22만원 짜리 입주권을 받지만, 전세금을 빼면 7만원이 남는다. 헐린 집을 새로 지으려면 130만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난쟁이 아들들이 공장 사장을 만나 담판을 하려다 해고당한다. 입주권 투기업자를 따라 집을 나갔던 난쟁이 딸이 입주권을 찾아 돌아왔지만, 난쟁이는 추락사했고, 나머지 가족들은 떠났다.

‘난쏘공’은 가진자를 가해자와 동일시하며 이분법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가 아닌 당시의 시대를 고려하면 사회의 빈부차를 가장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8년의 ‘난쏘공’과 2019년의 ‘기생충’은 각각의 시대가 가진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면서 이런 빈부의 차이가 40년이 지나도 해결되기 어려운 사회가 지속된다는 씁쓸함을 동시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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