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씨죠?
미안합니다. 내가 너무 궁금한 게 많아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000에게 통화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나는 4년 동안이나 만났던, 헤어진지 채 2개월이 안된, 이미 전 남친인 그의 여자친구라는 사람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이게 무슨 막장드라마냐며, 그 따위 막장드라마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친구에게 노발대발한지 정확히 2시간 만이었다. 실례인줄 '정확히' 알고 있던 그녀는 굳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왜 결혼은 안했냐??" "헤어진 이유가 뭐였냐?" "손에 끼고 있던 반지는 커플링이었냐?" "정확히 몇월 몇일에 헤어진거냐?" 를 물으며 아직 상처가 채 가시지도 않은 내 기억을 복기시켰다.
그렇다. 난 그 전화를 받기 2~3개월 쯤 전에 헤어졌다. 4년 여간 만나오면서 제대로 된 싸움 한 번 없었던 우리가 잦은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고, 홧김에 헤어지자고 한 줄 알았던 그의 이별통보는 사실 새로운 여자친구가 이유였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는 우리가 연인 사이인 줄 몰랐던, 내 친구에게 소개팅을 받은 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것이었다. 나와 연인 사이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친구는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펄쩍펄쩍 뛰었고, 나는 극심한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그토록 형편없는 사람이었다니... 내 자신에게 환멸감까지 밀려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거지 같았던 이별이 끝난 후 돌아보니 내 나이 35세였다. 두 번째 연애였다.
두 번째 연애를 끝내고 나니 남들 다 결혼해서 애를 낳아 기르고 있는 나이가 됐던 것이다.
그것이 억울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나는 결혼이니, 출산이니..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두 번의 연애가 너무 길었다는 것이다. 사랑을 쏟아부은 내가 바보 같았고, 그 따위로 지저분한 이별을 한 게 억울했다.
사람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며 나를 탓하는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기는 커녕 자책의 이유만 찾아댔다. 그리고 한 것이 피부과를 찾아 시술을 받는 것이었다. 이제 30대 중반이니 피부관리라도 해야 초라해보지이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떠난 그는 행복할텐데, 나만 초라해 보일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처음 받아본 피부 시술은 아팠다. 아.. 이별보다 더 아팠다. 왜 이렇게 예리하게 얼굴을 긁어대는지... 35평생 그렇게 아픈 치료는 처음이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병원을 나왔다. 이렇게 아픈 시술을 받게 된 것까지 모조리 그의 탓인 것 같았고, 사람보는 눈 없는 나의 바보짓 인 것 같았다.
나중에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서른을 넘긴 여자가 이별 후에는 그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 찾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사실은 배신을 한 그 새끼가 잘못한 건데, 배신을 당한 자기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으려고 애 쓴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하여 성형수술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한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책이 어쩜 꼭 나를 보고 하는 말 같아서 또 한번 쪽팔렸다. .아.. 이렇게 바보 같다니..
사실 난 대학시절부터 인기는 적지 않았다. 남초가 극심했던 공대에 다닌 탓이기도 했지만 평소 말이 없는 성격에 마른 몸, 길게 기른 머리는 딱 신비감을 주기 좋았던 모양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남성비율이 월등했던 직종에 몸 담았기에 심심치 않게 고백을 받아왔던 터였다. 높게 담을 쌓아 누구도 나를 만만히 볼 수 없게 하겠다는 은근한 다짐은 남성들이 많은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는 일종의 방어막이었다.
그 즈음.. 평소보다 침울해 보이고, 더 말이 없어지고, 초췌해 보이던 나에게 한 후배가 말했다.
"선배 예수를 봐봐. 두 팔을 벌리고 있잖아. 그러니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거야. 선배는 가드가 너무 높다. 그렇다고 인파이팅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울타리를 조금 내리고 사랑을 받으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사랑을 하라는 말이었다. 35살 먹은 여자가 후배에게 들은 충고 치고는 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날 생각했다. 그래.. 많이 만나보자. 그래야 사람보는 눈도 키울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알게 될테니..
그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약 4~5명의 남자를 만나보았다.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트라는 걸 해보고, 쉬는 날 놀러도 다니면서. 문제는 그 정도 마음으로는 귀차니즘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주동안 피로했던 몸을 주말에 일으키려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보다 귀찮은 게 더 커서 잡아 두었던 약속도 취소하기 일쑤였다. 그것도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그렇게 사람을 성의없이, 진정성 없이 대하면서 그저 멍한 눈으로 만난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마음을 방탕하게 썼던 때가 아닌가 싶다.
'데미안'을 다시 읽으면서 벌써 10년도 훌쩍 넘은 그때 일이 기억난 것은 아마도 싱클레어의 시행착오 때문이었던 것 같다.
헤르만헤세의 성장담이라고는 하지만 인간 심연을 예리하게 꿰뚫는 글은 성인이 되고 나서 읽으니 또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 초판 디자인을 복원한 커버링이 너무 예뻐서 충동구매한 '데미안'사고나서 보니 거의 30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 고등학교 때 필독도서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면 숙제처럼 읽었을 뿐 한번도 이 책을 진지하게 음미하면서 읽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많은 필독도서가 그렇듯 어른이 되고 나서 자발적으로 다시 읽을 때 또 다른 각도로 책을 해석하게 된다. '어린왕자'가 그러했듯 '데미안' 역시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경험한 후 읽는 맛이 새롭다.
헤르만헤세 자신의 성장기록이라고도 평가 받지만 이제와 다시 읽어본 '데미안'은 인간의 심연을 꿰뚫는 책이다. 처세술도 들어 있고, 심리학도 들어있다. 얼핏 한 소년의 성장담 같지만 읽는 내내 화자보다 청자가 투영되고 있음을..
안읽어본 사람 많지 않을테지만 다시 읽어본 사람 또한 많지 않을 '데미안'을 꼭 다시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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