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들이 사랑한 소설가. 중편과 단편, 장편소설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최은영 작가다. 지난해 '밝은밤'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믿고 읽는 작가'라는 수식까지 얻은 그녀는 문단에서 뿐만 아니라 독서가들의 심연에까지 내밀하게 자리 잡았다.
2013년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최은영 작가는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2018년 소설가 50명이 뽑은 그해의 소설로 선정되며 문단의 인정을 제대로 받은 인물로 꼽힌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사람의 마음’에 집중하며 그 마음이 흘러가는 지점들, 모이는 형태, 출렁이는 모양새까지 세심하게 그려내며 독자들을 매료하고 있다. 문단과 독자가 지지하는 소설가, 최은영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 “글 못 쓴다” 생각도 누를 수 없었던 소설 향한 욕망
최은영 작가는 1984년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며 생각하기를 즐겼으며 일기 쓰기와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처음 품은 때는 고교 시절이었다. 그는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은희경, 양귀자 등 작가들의 책을 보며 글쓰기에 도전하지만 그 결과는 절망이었다. 자신보다 글을 잘 쓰는 이들을 보며 스스로 글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20대를 흘려보낸 그는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고, 다시 튀어나온 욕망에 이끌려 고려대 국문과에 진학한다.
다만 10대의 치기어린 마음이나 자포자기는 더 이상 없었다. 그는 2년 여 간 공모전에서 탈락하고 심사평에도 오르지 못하던 시절에도 소설 쓰기가 자신의 업이라 생각하며 버티고 버텼다. 그 끝에 최은영 작가는 2013년 겨울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봇물이 터지듯, 그간 응축했던 한을 풀겠다는 듯 그는 2013년부터 매년 유수한 문학상들을 휩쓸며 문단에 새 바람을 일으킨다. 2014년 제 5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2016년 제 8회 허균문학작가상을 비롯해 2017년에는 구상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2018년 한국일보문학상과 지난해 수상을 거부한 이상문학상까지 더하면 그는 등단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문단의 인정을 받은 셈이다. 등단 2년 만에 단편과 중편을 합해 11편의 작품을 써내려갔으니 그 노력의 성과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적 매력은 순수함, 인간 관계와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지지를 받게 만든 힘이기도 하다. 최은영 작가에게서 탄생한 캐릭터에는 누구나 생각했고 아파했던 순간들이 섬세한 필력으로 그려진다. ‘그 여름’의 주인공은 13년 전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을 만나 자기가 아프게 했던 이를 떠올린다. ‘고백’에선 눈빛으로 했던 가혹한 말을 고백하며 ‘모래로 지은 집’에서는 관대한 상대를 향해 “뭘 아느냐”고 상처를 자랑한 순간에 대해 말한다.
■ “늘 사람 생각을 한다” 어설프고 미숙한 우리를 그린 작품들
데뷔작 ‘쇼코의 미소’에서는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성장의 문턱을 넘는 과정이,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는 상대를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연인이 욕심과 위선으로 이별하게 된 이야기가 무심하고도 선명하게 비춰진다. 최은영 작가는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던 시절과 순간을 겪어내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때의 그 마음을 되살려주고 반성하도록 하고 따뜻한 온기로 보듬는다.
이 지점에서 최은영 작가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그는 자신의 작품 제목만큼이나 무해한 작품들로 독자와 만난다. ‘쇼코의 미소’에서 작가의 말을 통해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내비친 그 마음 그대로 작품세계를 구축해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 해설자로 나선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그의 글을 두고 “최은영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러는 동안 마음을 채우고 흘러가는 감정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면서 “누군가가 전하는 작은 온기 뒤에 자리한 단단한 슬픔을 읽어내고, 관계의 어떤 미세한 균열도 사소하게 바라보지 않는 작가의 힘은 이 세계를 쓸쓸하지만 투명하게 빛나는 곳으로 비춰낸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작 그 자신은 온전한 자신으로서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소포모어 징크스(첫 작품에서 성공한 후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 흥행이나 완성도에서 첫 작품에 비해 부진한 상황)에 떨었다. 첫 책 ‘쇼코의 미소’가 10만부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엄청난 지지를 받은 데 따른 일종의 부작용이었다. 그는 두 번째 책을 내기 전까지 이민을 갈까 고민할 정도로 부담이 컸다고 알려지지만 ‘내게 무해한 사람’은 보기 좋게 성공을 거뒀다. 평단과 현역 소설가들,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이 하나같이 의미있다는 독자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작품을 쓰거나 자신의 삶에서 역시 늘 사람 생각을 한다고 고백한 그다. 자신에게 혹독했기에 더욱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쓸어주는 작품을 쓰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난 2018년 ‘예스24 여름 문학학교’ 행사에서 “자기비난을 하지 않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릴 때도 나 자신을 절대 인정해주지 않고,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그것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나를 채찍질 하면서 비난하고 못되게 굴었다. 하지만 그건 잘사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다른 사람한테 관대하지만 자신한테 엄격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 같다”면서 “나한테 조금이나마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힌 바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위안이 될 수 있는 관대함의 깨달음을 전하던 그는 그렇게 작품을 통해 미숙했고 어설프고 위태로운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써내려가며 오직 사람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위로에 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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