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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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8 13:30 | 최종 수정 2024.12.0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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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율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내 입양율이 저조해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시킬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오지만 한국이란 나라의 성장력과 국가 경쟁력, 그리고 인구절벽 시대라는 과제와 맞물려 해외 입양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 가고 있다. 한국에서 입양된 이들의 고충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TV에 나와 울먹이는 한인 해외 입양인들을 볼 때가 있다. 그토록 바라던 부모를 끝내 찾지 못했거나 한국이란 뿌리를 찾아왔음에도 해외에서 겪었던 조롱과 차별을 똑같이 겪고 있다는 토로가 잇따른다. 그런가 하면 합법적으로도 입양되고서도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한인 입양인들도 적지 않아 시민권 자동 부여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기도 한다. 이들의 고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일 것이다. '한국에서 가난하게 사느니 남들은 유학도 간다는 해외가서 행복하게 사는 게 낫지 않냐'는 논리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들의 진정한 행복은 입양된다는 것, 입양된 국가가 어디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계 입양 미국인 패티 유미 코트렐이 쓴 장편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은 그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해외로 입양되는 한인 입양인들의 속마음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생물학적 연관성이 없는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집을 떠나 뉴욕에서 ‘독하게’ 살아가는 헬렌과 직업도 없고 친구도 사귀지 않으며 거의 방 안에서만 살아가는 남동생. 사람들은 그들이 꼭 닮았다고 말하지만 정작 둘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을 뿐더러 각기 다르게 입양됐기에 서로를 깊이 알지 못한다. 그러던 중 동생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동생의 자살에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긴 헬렌은 처음으로 동생의 삶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헬렌은 동생이 철저하게 죽음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소설은 헬렌이 동생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으며 시작된다. 이같은 설정은 작가인 코트렐이 직접 겪은 일이기도 하다. 1981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중서부로 입양된 코트렐은 양무보의 선택으로 한국의 입양아 남동생 둘을 얻게 된다. 그 중 한명이 스스로 목숨을 끌었고 차터스쿨 교사로 일하던 코트렐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써내려간 끝에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을 완성한다. 그렇기에 소설 속 헬렌은 코트렐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이야기를 끌어가며 입양아들의 현실과 내면의 상처들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들은 살아야 할 이유와 삶의 숭고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독립출판협회는 이 작품을 쓴 코트렐에게 금상을 수여했으며 미국 최대의 서점인 반스앤노블은 신인상인 ‘디스커버상’을 안겼다. 제프리 유제니디스와 안드레 애치먼 등 역량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온 화이팅 재단(The Whiting Foundation)에서는 화이팅 어워드를 수여했다. 코트렐은 영미권 독립출판계가 가장 주목하는 젊은 작가로 꼽히고 있다.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 이원경 옮김 | 비채 | 248쪽 | 1만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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