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저작권 현주소] ②표준계약서·에이전시 등 작가들 눈물로 일군 발전에도…여전한 과제

이지영 기자 승인 2025.01.07 15:30 의견 0

새해 벽두부터 문학계에 큰 논란이 일었다. 44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이상문학상이 수상작에 대한 저작권 양도를 요구했다가 작가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며 저작권이야말로 작가의 권리라고 주장했고 출판사 문학사상사는 이상문학상 발표를 무기한 연기했다. 문단도 여론도 작가의 편에 섰고, 이 때야말로 작가의 저작권 개선과 기존 문학상의 문제점 해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작가의 저작권 현실과 국내 문학상의 실태, 작가의 저작권을 보다 잘 지킬 수 있는 방향성 등 포괄적 개념에서 문학계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살펴본다.-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2010년 초반만 해도 작가가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 분량도 조항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통상 10장을 넘나드는 출판계약서에는 종이책을 비롯해 전자책, 오디오북, 드라마화 등 2차 저작권에 대한 내용이 꽉꽉 들어차 있다. 그만큼 작가의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중요시 여기고 이를 작가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이상문학상 주최 측의 ‘저작권 3년 양도’는 시대를 역행하는 만행이란 지적이 잇따른다. 작가를 위한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만약 문학사상사가 저작권에 대한 작가 및 사회의 인식 변화를 충분히 인지하고 공감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도 빗발친다. 같은 취지에서 작가의 저작권은 그간 어떤 형태로 얼마나 침해당했는지, 작가의 고통과 함께 개선돼 온 저작권 보호의 개념은 어느 위치까지 온 것인지에 대해 살펴봤다.

■ 90년대부터 2010년 초까지, 작가 저작권 침해 거듭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저작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약 30여 년 전이다. 지난 1990년 10월,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는 ‘저작권법의 당면 문제’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저작자와 출판사 사이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합의 내용이 명확치 않고 이로 인해 출판권 분야의 실제 거래에 있어 분쟁이 잦다고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거래 관행 및 입법례에 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이해 당사자의 조정을 거친 표준 출판계약서를 작성, 이를 통해 출판계약을 맺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후 작가의 저작권 보호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문제는 계속 터져 나왔다. 단적인 예가 작가 개인이 아닌 협회에 저작권을 위임하는 형식에 대한 반발이었다. 2011년 노경실, 박상률 작가와 도종환 시인 등 17명이 성명서를 통해 출판사가 작가가 아닌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와 계약을 통해 중복출간 및 원작 훼손 등 행위로 작가의 인격권과 독자의 권리까지 침해했다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바다. 당시 작가들은 “협회는 작가가 원치 않는 계약을 종용하거나 협회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작가에게 탈퇴서를 보내는 등 횡포를 부리고 있으며 저작권료의 15~20%를 수수료로 공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작가의 작품을 재인용하는 것과 관련, 협회가 계약을 대행하는 유일한 단체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진=YTN 뉴스화면 캡처
(사진=YTN 뉴스화면 캡처)

불과 8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는데 비슷한 시기, 저작권을 출판사에 모두 넘기는 매절 계약도 수많은 신인작가들을 울렸다. 이에 더해 작품의 미디어 활용도가 다양해지며 생기는 2차 콘텐츠 저작권 문제까지 겹쳤다. 대표적 예가 백희나 작가다. 그림책 작가인 백 작가는 무명시절이던 2004년 ‘구름빵’의 저작권을 매절계약으로 넘긴 탓에 콘텐츠로 벌어들인 매출의 1000분의 1도 가져가지 못했다. 매절계약은 일정 금액의 인세만 받고 1차, 2차 저작권 일체를 출판사에 양도하는 것으로 출판사가 ‘구름빵’으로 44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작가에게 돌아간 수익은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출판업계의 전횡은 2014년에야 알려졌고 공정거래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 제도를 뜯어고치기에 이르렀다. 백 작가의 사연이 알려진 뒤 공정위는 ‘제2의 구름빵 계약’을 막기 위해 출판 계약을 할 때 영화, 방송 등 2차 콘텐츠에 대한 권리가 작가에게 있다는 걸 명시하도록 했다. 문체부도 작가와 출판사 간에 사용되는 표준계약서 6종과 해외용 표준계약서 1종으로 구성된 ‘출판 분야 표준 계약서’ 7종을 마련해 발표했다. 표준계약서의 유형을 단순 출판허락 계약서, 독점 출판허락 계약서, 출판권 설정계약서 등으로 세분화해 작가들의 상황에 맞게 표준계약서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때 당시 백 작가는 ‘해리포터’ 조앤 롤링과 비교되기도 했다. 조앤 롤링 역시 무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는 매절 등과 같은 불합리한 계약으로 그의 저작권을 빼앗아 가지 않았으며 그 덕에 조앤 롤링은 1조원 넘는 수익을 창작의 값어치로 손에 쥐었던 바다.

사진=문학 에이전시 블로썸 크리에이티브 홈페이지
(사진=문학 에이전시 블로썸 크리에이티브 홈페이지)

■ 종이책으로 끝나지 않는 저작권 시대, 체계적 보호막 자처한 문학 에이전시

이처럼 저작권 문제로 인한 작가들의 눈물과 고통이 계속됐다. 다행인 점은 이같은 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더욱 명확해질 수 있었고 저작권에 대한 보호 역시 더욱 강화될 수 있었따는 것이다. 특히 작가의 창작물을 종이책으로만 사용하는 경우보다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로 활용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작가의 창작물을 보호하고 그 수익이 작가에게 더 많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국내 2차 콘텐츠화를 비롯한 해외판권, 웹소설 시장 등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문학 에이전시가 작가의 저작권을 보다 잘 지켜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김영하, 김금희 작가 등 유명 인기 작가들이 대거 소속돼 있는 블러썸 크리에이티브는 작가가 2차 저작권 문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없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와 수익을 챙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작가 작품의 영화 및 드라마, 공연화에 대한 2차 저작권 문제는 물론 방송 출연 및 강연 등과 같은 외부 업무를 함께 담당한다. 특히 에이전시는 작가가 계약서의 잘못된 조항을 점검하거나 협상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을 줄여주고 특정 출판사에 소속됐을 때 타 출판사에 낸 책에 대한 홍보가 이뤄지지 않는 등 복잡다난한 일을 줄여준다는 이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가 하면 KL매니지먼트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 수출하고 해외 판권을 관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지영, 정유정, 한강 작가 등 국내 작가 여러 명의 작품이 이 곳을 통해 해외로 진출했다. 에이전시를 통하면서 해외 판권으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2차 저작권에 대한 다양한 수익구조를 작가가 직접 알아봐야 하고 점검해야 할 수고가 줄어들었다. 웹소설 작가 에이전시인 라온 E&M의 경우는 점점 성장하는 웹소설 시장에서 작가들이 보다 공정하게 일하고 투명하게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라온 E&M 측은 수익의 10% 정도가 작가에게 돌아가는 구조에서 에이전시를 통해 작가가 가져가는 수익이 40~50%까지 신장됐다고 알리기도 했다. 신인작가를 양성하고 플랫폼과 연결한다는 점도 작가가 보다 수월하게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는 평이다.

이같은 에이전시들의 등장에 대해 출판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출판사가 작가 작품의 저작권을 관리 대행할 경우 편집자가 작품의 2차 저작권까지 관리해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때문에 출판사로서도 작가 에이전시를 통해 부담을 덜 수 있게 되는 편이다. 또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만약 출판사가 나쁜 의도로 작가에 불합리한 조건을 제시할 경우에도 전문 에이전시가 나서 이를 막아주고 분쟁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도 작가에겐 이점일 것”이라면서 “작가의 작품이 단순히 종이책으로 읽히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로 발전할 가능성과 기회가 더욱 폭넓어짐에 따라 최근 몇몇 출판사도 작가의 권익보호를 위한 에이전시 개념의 팀이나 회사를 꾸리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또다른 관계자 역시 “시대가 변했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저작권 인식과 보호가 강화되면서 작가들 역시 저작권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그만큼 출판사도 고민을 거듭해야 하고 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상문학상 사태로 작가들은 더욱 똘똘 뭉쳐 권익보호에 대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작가는 저작권의 주체가 되어야 작품의 창작자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정당한 대우가 뒤따라야 한다. 더불어 이번 사태가 작가의 저작권이 사회에 안착하고 진화를 거듭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작가들의 인식 제고 및 제도의 발전, 에이전시의 등장 등으로 작가의 권익보호는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작가의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다. 전자책 대여 및 오디오북 저작권 문제는 아직 명확히 구분되지도 않아 작가에게 불리할 수 있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으며 도서관 대여에 대한 저작권 논란도 계속되고 있는 판국이다. 한 작가는 “도서관에서 도서를 대출받아 책을 읽는 독자들이 많은 상황이지만 정작 그 작품의 주인인 작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전무한 상황”이라며 “독자의 독서가 도서관을 통해 이뤄지는 일이 많은 만큼 국내 음원차트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저작권료 지불처럼 작가들이 대여 시스템에서도 일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작가들의 저작권 보호체계는 해가 갈수록 나아지고 있는 실정이지만 바꿔 말하면 이는 그간 작가들이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고 아직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국내의 저작권법이 어디까지 작가들의 권익을 지켜주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어떤 형태로 진화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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