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라 불린 회장님' 故구본무의 반전 리더십

이지영 기자 승인 2022.06.07 10:15 의견 0
사진=LG그룹
사진=LG그룹

2018년 5월, 큰 별 하나가 떨어졌다. 럭키금성이란 사명을 바꾸고 세계 기업으로 저변을 확대하고 성장시켰던 故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다. 구 전 회장은 조용하고 소탈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사업에 있어서만큼은 발톱을 드러내며 달려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때문에 업계가 평가하는 게임체인저, 혹은 백조다. 소탈한 성품을 기반으로 한 존중과 배려의 리더십, 사업에 있어서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발휘한 완벽주의자, 남다른 소신의 기업인 모두 구 전 회장을 설명하는 수식어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다. 평소 “매장 위주 장묘 문화로 전 국토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땅으로 변질하고 있다. 전국 명당이라는 곳마다 산소가 만들어져 안타깝다”는 말을 했다는 그가 잠든 곳은 어느 나무 아래였다. 나무에 식별만 남기는 수목장을 선택하면서 그는 떠나는 길에서도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가 세상을 떠난 해로부터 23년전인 1995년, 구 전 회장은 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그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남이 하지 않은 것에 과감히 도전해 최고를 성취해왔던 것이 LG의 전통이고 저력이다. 이제 ’세계 초우량‘을 목표로 하는 강한 LG를 만들자“고 각오를 밝혔고 그때부터 LG는 바뀌기 시작했다. 럭키금성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LG를 사용한 것도 이때부터다.

■ 남다른 승부욕과 원칙주의, 그의 좌우명은?

사업에 있어 구 전 회장은 남다른 추진력과 승부사 기질로 LG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단적인 예로 취임 3년만인 1998년말 대규모장치 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진출, LG디스플레이를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기업 부회장이던 1992년에는 영국 출장에서 본 2차 전지를 LG화학 주력 사업으로 육성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킨 바다. 이같은 사업가 기질 덕에 LG가 창사 61주년이 되던 2008년의 매출액은 110조원. 2007년 한국 국내 총생산(GDP)의 9분의 1을 넘는 매출이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승부근성“이라는 좌우명이 있다고 알려질 만큼 승부욕 또한 대단했다. 지난 2013년 그는 ‘삼성전자가 TV용 올레드패널을 포기한다’ ‘중국 디스플레이업체들이 LCD패널 생산에 뛰어든다’는 등 소문이 도는 가운데 더욱 전투적으로 TV용 올레드패널 개발을 추진했다. 2016년에는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가 급부상할 것이라 점치고 자동차 전장부품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사업확대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같은 면모에 세계 재계는 구 전 회장을 두고 ‘게임체인저’로 칭하기도 했다.

사진=LG그룹
사진=LG그룹

평소에는 조용한 성격 탓에 그의 또다른 별명은 ‘백조’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태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단히 움직이며 회사를 성장시켰다는 평가다. 구 전 회장은 지난 2003년 지주회사를 출범하고 나서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자신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하는 일과 대장을 정하는 일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계열사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각 인사들에게 세세한 지시를 하는 치밀하고 면밀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구 전 회장 측근들의 이구동성이다. 특히 사사로운 얘기를 하다가도 사업의 정중앙을 파고드는 그의 화법은 계열사 CEO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발맞춰 기업을 성장시키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구 전 회장은 ‘CEO와는 멀리, 직원들과는 가깝게’라는 철칙을 세우고 인재 경영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남다른 소신과 원칙주의도 그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거름이 됐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터졌을 당시 한 국회의원이 기업의 정경유착을 지적하며 “명분만 맞으면 앞으로도 국가가 돈 내라고 할 때 돈을 낼 것이냐”고 물은 데 대해 그가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주십쇼”라고 한 한마디는 국민들 사이에서 소위 사이다 발언으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특히 박근혜 정권의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무풍지대로 남은 것은 LG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바꿔 투명한 경영체제를 구축한 정도 경영 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요즘 갑질과 비교되는 구본무의 됨됨이

사회공헌활동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덕에 LG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리더라는 평가도 받는다. 실제로 그는 2015년 시작한 ‘LG의인상’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및 후손 지원, 환경보호, 해외 공헌 등 전방위 사회공헌활동의 초석을 다지면서 세간으로부터 “LG홍보팀이 일을 하지 않아서(좋은 일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라는 기분좋은 유행어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구 전 회장의 존중과 배려의 리더십, 소탈한 성품은 그가 기업을 이끌고 성장시키는 기반이 됐다. 공식행사나 사적인 약속을 가리지 않고 20~30분 먼저 도착해 상대방을 기다리는 사람이 바로 구 전 회장이었다. 그의 사전엔 코리안 타임 뿐 아니라 핑계도 없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자신의 차가 갓길을 운행하거나 법을 위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그런가 하면 그의 부장 시절 해외출장을 함께 간 기업인사가 귀국한 뒤에야 구 전 회장이 그룹 회장 맏아들임을 알고 놀랐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는 행사 참석이나 해외 출장시 비서 한명만 수행토록 했고 주말 지인 경조사에 갈 경우 비서 없이 홀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아랫사람에게도 반말하는 법이 없었다는 그에 대한 평가는 요즘 들어 팽배한 기업인들의 비인간적 갑질과 더욱 비교된다.

또 한가지 그의 치밀함과 집중도 경영인으로선 필요한 자질이었다. 그는 골프나 술자리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치밀함을 보였고 남다른 탐구정신으로 LG상록재단을 통해 국내 최초의 그림 조류도감 ‘한국의 새’ 및 ‘한국의 민물고기’란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구 전 회장은 사망 1년 전인 2017년, 창립 70주년을 맞아 마치 유언과도 같은 말을 임직원들에게 전했다. “100년을 넘어 영속하고 존경받는 기업이 되자”는 것이었다. 어떤 환경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사업구조와 경영 시스템을 혁신해 미래를 주도하는 기업이 되자고 강조한 것인데 ‘젊은 피’ 구광모 회장이 그의 이런 뜻을 이어받았다. 경영철학이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현 회장이 선친의 리더십도 함께 물려받았다면 LG의 백년대계는 자리잡았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사진=이레미디어, 한국경제신문
사진=이레미디어, 한국경제신문

■ LG 구본무 미래변화를 주도하라& LG Way(엘지 웨이)

‘LG 구본무 미래변화를 주도하라’(이레미디어)는 2010년 발간된 책이다. 2009년 금융위기 중에도 LG가 총 매출 125조원, 영업이익 7조 1000억 원을 돌파하는 놀라운 실적을 올린 데 따른 경영 분석 저서다. 기업 간의 기술적 차이가 미세해진 경영 환경 속에 제품 디자인에서 차별화 방안을 찾은 구본무 전 회장의 리더십과 이로 인한 LG의 드라마틱한 성장사를 담고 있다.

‘LG Way’(엘지 웨이·한국경제신문)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LG의 경영원칙을 밝히는 책이다. LG그룹 출입기자였던 저자 노경목이 바라본 LG의 성공비결이 담겨 있다. 특히 저자는 LG라는 기업과 오너 일가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책 소개에서부터 저자는 구본무 회장 별세 후 신문사로 걸려온 한 여성의 전화를 통해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힌다. 이 여성은 구본무 전 회장 덕에 인정받는 광고인이 됐다며 사연을 밝혔다고 한다. 저자는 이 사연과 함께 구본무 전 회장과 오너 일가의 철칙 및 지난 70여 년간 LG가 커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분석한다. 기업 간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온 LG만의 경영철학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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