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버린 여성의 미덕, 그 통념을 깬 여섯 지식인

김경오 기자 승인 2022.07.22 13:05 의견 0
사진=책세상
사진=책세상

오랜 세월을 통해 여성에겐 굳건한 프레임이 씌워졌다. 여성의 매력은 공감과 우아함, 부드러움에서 나온다는 것. 따라서 시대의 강인한 여성들 대부분은 남성들의 적이 되거나 자신의 공적과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괄시의 대상이 됐다. 더 오랜 시간으로 돌아가선 마녀로 몰려 화형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다르다. 강인한 여성들이 걸출한 능력을 뽐내고 세상을 리드하며 어루만지고 있다. 특히 전쟁이나 폭력, 죽음과 장애 등 같은 현실의 고통에 연민이나 동정, 구원만이 답이 아니라며 강인한 사상과 터프한 도전으로 통념을 깨뜨린 이들이 적지 않다.

‘터프 이너프’는 이런 여성들을 다룬다. 20세기의 매력적이고 논쟁적인 여섯 여성 지식인을 다루면서 공감 대신 강인함을 선택한 그들의 생과 행보를 되짚는다. 독특한 신학과 정치학을 개진했던 철학자 시몬 베유, 20세기 최고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 소설가이자 당대 지성계에서 독보적 여성이었던 메리 매카시,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평론가, 소설가인 수전 손택, 사회적 주변인들을 작품에 담았던 천재적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 2005년 전미 도서상을 수상한 작가 조앤 디디온 등이 그 주인공이다.

시카고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서 20세기 후반 미국 문화와 정치 분야를 주로 연구한 데보라 넬슨은 이들을 두고 어떤 단일한 전통도 따르지 않으며, 단순한 범주로 묶을 수도 없다고 말한다. 다만 저자가 살펴본 바 여섯 명의 여성 지식인들에게는 문체와 철학적 관점에서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서 유난히 ‘강인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이들의 ‘터프함’은 그간 여성의 미덕처럼 여겨져 온 감정 표현에 대한 혐오가 아니다. 저자는 작가의 윤리적 입장과 미학적 접근방식을 결정하는 ‘비감상주의적 태도’를 터프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를 통해 다시 조명되는 이 여성들은 공감만이 고통을 마주하는 올바른 태도라는 기존의 생각에 도전하며 강인한 것은 여성들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이라던 통념에 저항하는 삶을 살았다. 이들 모두는 인간의 고통과 세계의 상처가 공감이나 연민에서 나오는 격정적인 수사나 드라마에 기대지 않으려 하면서 그 상처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으로 치유되어야 한다는 강인한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면서 공감이나 연민이라는 감정이 때로 사실을 가리는 가림막이 되고 도덕적 만족감만 준 채 올바른 실천이나 행위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이 여섯 지식인을 통해 밝혀졌다고 분석한다.

위안이나 보상 없이 현실을 대면하기를 강조하면서 감정 과잉과 냉정한 아이러니의 양극단 사이 좁은 길을 걸었던 이 여성들이 현실의 고통에 맞선 진정한 의미의 터프함이 ‘터프 이너프’를 통해 펼쳐진다.

저작권자 ⓒ 리드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