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불의에 맞선 학자, 장 지글러의 ‘실천’

이지영 기자 승인 2022.06.22 16:20 의견 0
사진=장 지글러 페이스북
사진=장 지글러 페이스북

“희망은 서서히 변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中)

장 지글러가 자신의 저서에서 한 말이다. 장 지글러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 기술을 내놓거나 누구나 알만한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 아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특유의 사업수완으로 직원들 월급을 줘가며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이 아니다. 현대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회학자다. 그가 현대 사회의 리더로 불리는 이유는 ‘실천’에 있다. 그는 자신의 지식과 세상을 꿰뚫는 눈으로 사회의 변화를 부르짖으며 목숨의 위협 앞에도 진실을 알리고 자신의 논리를 입증해내는 실증적 사회학자다.

‘현대사회의 리더’로 꼽을 만한 그는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제네바 대학과 소르본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던 그는 1981년부터 1999년까지 스위스 연방의회에서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단순히 성공한 학자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 그를 세계인이 기억하는 지성인으로 손꼽게 한다. 그는 인도주의와 정의에 대해 주창해온 인물이다. 특히 장 지글러는 책을 통해 전세계에 큰 파급력을 자랑하며 세상이 그를 해하지 못하게 하고 무지했던 일반인들을 개안(開眼)하게 만들었다.

장 지글러는 인도적 관점에서 빈곤과 사회구조의 관계에 대한 글을 의욕적으로 발표하는 저명한 기아문제연구자다. 그는 종종 빈곤과 사회구조 사이의 관계에 대해 꼬집고 인도적 관점을 더하는 글로 주목받았고 2000년부터 2008년 4월까지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이기도 한 그는 세계에 120억명을 먹이고도 남을 식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절반이 굶주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꼬집는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전세계인의 필독서로 꼽힌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꾸린 책에서 장 지글러는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로 인해 구호 조치가 무색해지는 현실, 국제구호기구 활동의 딜레마,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는 사람들, 소는 배불리 먹고 사람은 굶는 현실, 사막화와 삼림파괴로 인한 환경난민,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 등 다양한 현실이 어떻게 얽혀 비극을 만드는지 낱낱이 설명한다. 그저 “굶주린 아이를 도와주세요”가 아닌 세계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설득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자신의 신념을 세상에 투영해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사람들을 설득해낸다는 점에서 장 지글러는 인도주의에 새로운 논리대와 명분을 세운 리더라 볼 수 있다.

사진=장 지글러 페이스북
사진=장 지글러 페이스북

■ 목숨도 내놓은 진실의 외침, 사람들을 일깨우다

그 뿐인가. 장 지글러는 목숨의 위협 앞에서도 진실을 알리겠다는 신념으로 조국을 파헤치고 유엔의 이면을 드러내며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 일조했다.

국제법 분야에서 인정받는 학자이자 실증적인 사회학자인 그는 스위스 은행이 세계의 독재자, 범죄자들의 예금인들을 신분을 가리는 것과 실체에 대해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를 통해 고발했다. 댓가는 컸다. 그는 의원 면책 특권을 박탈당하고 조국의 배신자라고 비난받았다. 고소가 빗발쳤고 스위스 우익들로부터 목숨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진실을 알리겠다는 신념으로 모든 것을 견뎌내면서 자신의 신념과 세상의 정의를 구현하는 데 앞장섰다.

‘유엔을 말하다’에서도 투기자본의 약탈과 열강들의 아귀다툼 속에서 무기력해진 유엔의 진짜 얼굴을 들추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유엔에서 일하면서 겪고 느꼈던 과정을 통해 유엔의 명암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평화와 정의 수호를 위해 탄생한 유엔이 힘의 논리 앞에 무너진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폭로한 장 지글러는 “유엔은 힘을 잃어 창백해졌다. 유엔을 지탱했던 꿈, 세계적인 차원에서 공공질서를 회복한다는 꿈은 부서졌다”고 지적하면서 인류를 위해 싸운 수많은 이들의 뜻을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그의 글은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을 전했고 영감을 줬다. 일반시민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십시일반하고, 깨뜨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힘의 장벽을 직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점에서 장 지글러는 일상에 치여 사는 지구촌의 소시민들의 의식을 깨어나게 해 준 등불이자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의 글 한줄, 말 한마디에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고 세상을 바로 보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글을 다시 한번 소개한다. 장 지글러가 살아온 방식과 신념이 짧은 글에 담겨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 명이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런 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재는 그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이 지구상에서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마다 1명씩 기아로 사망한다. 기아로 죽는 어린아이는 살해당하는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서서히 변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사진=갈라파고스
사진=갈라파고스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인간의 길을 가다’

한쪽에서 음식을 낭비하고 쓰레기로 취급하는 사이 지구 한쪽편에서는 밥 한끼, 빵 한조각이 없어 죽어가는 이들이 늘어만 간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장 지글러가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들을 쉽게, 그러나 무섭게 꼬집고 있는 책이다.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 경제적 논리 앞에서 모순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사람이 가져야 할 인정과 지구촌 일원으로서 해야 할 도리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길을 가다’는 장 지글러가 직접 쓴 인문학적 자서전이다. 그는 볼테르, 루소, 마르크스, 막스 베버, 루카치, 조르주 뒤비, 그람시, 호르크하이머 등 사상가들이 자신의 지적 토양이 됐다면서 이들을 통해 불평등의 기원, 학문과 이데올로기의 관계, 인간의 소외와 국가의 역할, 국민 개념의 탄생 과정과 사회의 발전과정 등을 고찰한다. 특히 장 지글러가 어떻게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됐는지, 불평등이 아닌 공정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인류가 연대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모색하고 있다.

저작권자 ⓒ 리드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