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보다 적나라하고 내밀하게 들여다보도록 현미경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 현대 문학의 3대 거장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옌롄커는 후자에 가깝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창조력을 쏟아부은 작품이 없다고 실패자라 말하는 점도 있지만 옌롄커는 날선 시선과 쓴웃음이 터지는 풍자를 통해 때론 잔인하게, 때론 헛웃음 나오게, 때로는 서글프게 세상을 비추고 있다.
작품을 통해 현실을 말한 탓에 중국 내에서는 출판되지 못한 책이 많은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옌롄커는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지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꾸준히 거론되곤 하는 옌롄커가 한국을 찾았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의 ‘세계작가와의 대화’ 첫 번째 주인공으로서다. 강연회에 앞서 만난 옌롄커는 그의 소설과 닮아 있었다. 유머러스했지만 예리하고, 풍자적이지만 진지했다. 만약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면 일정이 바빠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옌롄커는 민감한 영역의 질문은 사양하겠다면서도 현재 홍콩을 뒤덮고 있는 민주화 시위부터 중국 출판계의 검열 문제, 한중 작가들의 차이, 자신이 그리고 싶은 작품 세계 등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옌롄커는 왜 스스로에 ‘실패’의 망토를 씌웠나
옌롄커가 이날 처음 입을 떼고 한 말은 “내 글쓰기는 그렇게 대단치 않다”는 것이다. 그는 “내 글쓰기와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라면서 “여기 앉아있는 나도 실패한 옌롄커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가치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그가 겸손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실패는 진심이었다.
“나는 인생, 글쓰기에 실패한 사람이다. 인생 차원에서 말하자면 살면서 많은 이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80%이상은 실패했다. 글쓰기 면에서 보면 나는 위대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 지금껏 진정한 독창성을 가지고 창조성을 발휘한 작품은 없었다. 일상면에서의 나는 재미없고 심심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 봤을 때 나는 실패자라 말하는 것이다. 특히 작가로 살며 극도의 창작력을 발휘한 작품을 아직 쓰지 못했다. 작가로서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가장 개성있고 모든 창의력을 동원한 그런 작품 하나를 써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마 모든 작가들이 문학 자체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는 모두 다를 것이지만 나는 문학이 어떤 역할, 기능을 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개성이 있고, 독창적인 작품 하나를 써내는 것만으로도 비범하다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문학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도 생각한다. 대동소이한 소설을 많이 보는데 이런 소설은 실패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학의 가장 최고 경지에 이른 것은 심미의 기능이라 본다”
부단히 읽고 생각하고 또 읽는 것이 그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일이란다. 아직은 실패한 작가에 머물러 있다는 옌롄커. 그가 창작력을 발휘해 쓴 작품은 국내에도 출간된 ‘연월일’이 유일하다고. 작가가 작품을 쓸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영감인데 옌롄커는 창조력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디서 영감을 얻고 자신의 세계를 써내려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옌롄커는 단순명쾌하게 중국사회라고 답했다. 중국의 14억 인구들이 살아가며 벌어지는 일들만 봐도 자신이 영감을 얻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 광활한 중국의 이야기가 자산
그는 “중국서 소설을 쓸 때 특별한 영감이 필요하지 않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 사고와 이야기들은 작가가 영감으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보다 훨씬 많다. 스토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작가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면서 몇가지 예를 들었다. 중국의 교수와 지식인들이 모여 영어가 중국의 어느 지방에서 탄생한 언어라는 논쟁이 펼쳐지는가 하면 예수의 고향이 중국 어느 도시의 현이라는 주장 등에 대해서다. 옌롄커는 이같은 논쟁이 바로 두어달 전 일어난 것이라며 “휴대전화만 열면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가 말한 얘기들은 작가가 가진 영감이나 상상력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아마 내가 3박 4일 말해도 계속 쏟아질 얘기들이 중국에 넘쳐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이유에 대해 “중국의 시대정신, 상황과 연관있을 것”이라면서도 “나는 종종 책 한권을 읽고 나서 중국 현실로 돌아오면 내가 읽었던 책이 중국의 현실보다 훨씬 단순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내 소설을 읽고 신실주의라는 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황당한 리얼리즘이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중국”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간 ‘빨리 함께 잠들 수 있기를’에는 현실과 비현실을 섞었다. 특히 굉장히 자유로운 글쓰기 경험이었다는 것이 옌롄커의 퇴고 소감이다. 그는 서사와 허구, 신문형식, SNS 등 자유로운 형식과 기법이 동원된 신간에서 자신도 출연한다면서 “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해서 영화를 만들기를 바라는데 이것 역시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농을 던졌다. 진실과 허구,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덕에 신간은 끝까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들로 독자들을 유혹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부제 역시 ‘나와 생활의 비허구’다.
■ “중국 작가들은 침묵한다. 나 역시 그렇기에 나약하다”
워낙 현실을 아프게 꼬집고 감탄사가 터져나오게 비트는 작가인지라 중국의 현실과 한중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산 소고기 반대 시위에 우연히 참석해 봤다는 옌롄커는 현재 홍콩 시위나 당시의 한국 시민들 시위나 모두 자유화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어제 뉴스에서 홍콩 사건을 접했다. 한가지, 인류의 자유와 존엄을 향한 모든 노력은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든 간에 폭력이 자행되는 것에 반대한다. 경찰 발포에 관해서도 뉴스를 접했지만 누가, 무슨 이유에서 한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이해 못하고 있다. 지금 제 선에서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인류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한 노력은 소중하고 어떤 이유와 형태의 폭력도 반대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사람의 목숨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는 사드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에 대한 생각을 묻자 더욱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문학적 영역도 아닐뿐더러 한국에서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도 답해왔다. 그는 “중국인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중국서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드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일반인은 없다. 살아가며 신경쓸 일이 너무 많다”면서 “사드는 흘러간 문제다. 나는 어마어마한 중국 인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고 일축했다.
다만 옌롄커는 타국의 문학작가들이 시대 현안과 이슈에 참여하고 의견을 내지만 중국 작가들은 침묵한다면서 “나는 말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나약함이 드러난다. 중국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는 편이라고 하지만 그건 나를 과대평가한 것이다. 중국에 우수한 지식인들에 비해서도 정말 나는 그런 자격이 없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 “글쓰기의 자유, 한국작가 가진 게 더 많다”
자신은 나약하다고 하지만 평단의 평가는 그렇지 않다. 옌롄커는 중국의 살벌한 검열제도 속에서도 자유롭게 펜을 움직이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혹자는 그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혹자는 대담한 작가라고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옌롄커는 금서보다는 예술적 가치를 보는 것이 우선이라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은 모든 책을 검열한다. 검열제도는 사실 정확한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통과하지 못하면 금서가 되는데 이 기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중국 우수한 작품들이 문제 없이 출판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심사, 검열은 글쓰는 입장에선 억압받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에서 출판되는 작품이 좋은 작품, 나쁜 작품이다 말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은 예술적, 심미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다만 중국서 강조하는 것은 집단이다. 가정도 조직도 국가의 부분이다 이런 개념이다. 아마 중국 소설을 보면 이상하다 생각할 것이다. 등장인물이 많고 이렇게 복잡한 부수적 이야기가 필요한가 싶을 수도 있다. 한국의 김애란, 한강 작품만 봐도 가정, 개인에 포커스가 맞춰진 글쓰기가 많다. 이런 것이 확실히 한중간의 차이라 볼 수 있겠다. 글쓰기 자원으로만 보자면 한국보다 중국 작가가 행운이고, 글쓰기 자유도에서 보자면 한국작가가 가진 게 많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체제가 작가의 역량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위대한 작품은 작가에 달린 것이지, 작가가 처한 체제에 달린 것은 아니다. 아까 말했듯 중국에는 많은 스토리가 쏟아져나오는 풍부한 이야기가 있는 나라다.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작가에 달려 있다”
날카롭게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말한 옌롄커는 “60대 이후 내 창조력을 갈아넣은 작품을 써낸다면 가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걸 못 쓴다면 철저히 실패한 인생이 될 것 같다는 것이지만 이미 그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고, 그가 써내려갈 또다른 현실을 독자들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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