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책] 박찬욱 "내 영화의 자양분, 문학"

안소정 기자 승인 2024.09.18 09:00 의견 0
사진=JTBC
(사진=JTBC)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는 유독 원작 소설을 토대로 각색하고 재창조한 작품이 많다. 그를 세계적 감독으로 띄운 ‘올드보이’는 일본 원작 동명 만화가 바탕이었고, ‘아가씨’는 영국 소설 ‘핑거스미스’의 내용을 가져왔다. 그의 드라마 연출작 ‘리틀 드러머 걸’도 존 르 카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보다 책을 더 많이 보는 것으로 알려진 박찬욱 감독답다. 단지 괜찮은 원작 소설을 찾아 영화화하는 사람이었다면 세계 거장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원작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관객이 원작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자신의 색채와 정서를 담아낸다.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원작이 있는 작품을 두고 종종 ‘새로운 창조’라는 호평과 신선한 놀라움이 담긴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영화를 만드는 자양분은 문학이라 말해왔다. 분야, 장르, 국경을 넘나드는 그의 탐독력이 곧 관객과 평단을 놀라게 하는 한편의 영상 문학이 된다. 어릴 때부터 헌책방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는 박찬욱 감독의 ‘늘 새로운 아이디어’는 한 장 한 장의 페이지가 쌓이고 쌓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그가 그간 여러 창구를 통해 추천한 책 중 추린 두권의 책은 이문구의 ‘관촌수필’과 데이비드 로지의 ‘교수들’이다. 박찬욱 감독은 ‘관촌수필’을 두고 인물들의 성격을 구축한 면에 대해 최고로 꼽았고 ‘교수들’은 자신이 만들고 싶다가 아닌 로버트 알트먼이 영화로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개인적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진=문학과지성사
사진=문학과지성사

■ 도시화 물결에 훼손당한 농촌 사회 ‘관촌수필’

김동리와 서정주에게서 문학을 배웠고 우리 사회 민주화에 기여했던 故이문구의 자전적 소설이다. 대부분 입시를 위해 이 소설을 읽었거나 간략한 내용을 접했을 터다. 공부를 위해서가 아닌, 삶 속에서 자의에 의해 읽어본 독자들은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작품이다.

본격적인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던 70년대에 쓰여졌다. 작가는 자신이 유년 시절을 영위한 농촌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과 도시화의 물결에 훼손당하고 있던 농촌 사회의 아픈 세태를 담아내며 역설적으로 당시 우리 사회의 근대적 기획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수행하고 있다. 연작소설로 전통적 유교 사상과 반상 의식에 묻혀 있던 지방 토호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는 ‘일락서산’을 시작으로 ‘화무십일’, ‘행운유수’, ‘녹수청산’, ‘공산토월’ 등 5편이 수록돼 있다.

사진=마음산책
사진=마음산책

■ 교수들의 야심과 욕망을 꿰뚫은 ‘교수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데이비드 로지의 작품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교수 사회를 무대로 삼아, 제트기를 타고 전세계를 여행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국, 미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터키, 일본,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학자들은 마치 성배를 탐색하는 기사들처럼 학술회의에 참가하며 세계를 일주한다.

그 안에서 교수들은 자신의 발표만 하고 회의장에서 나가는가 하면 학술회의에 참가한 이성에게 집착한다. 경쟁 교수의 저서를 읽지도 않은 채 마구 깎아내리기도 한다. 제자와 성적으로 거래하거나 논문 표절 등 일은 다반사다. 학자 사회의 천태만상을 풍자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움베르토 에코로부터 “최근 100년간 출판된 소설 가운데 가장 재미있고 진실하고 잔인할 정도로 유쾌한 소설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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