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을 따르던 재벌 2세는 자신 안에서의 확신을 통해 변화하는 시대 속 새로운 기업의 역할을 제시하고 180도 다른 리더로 재탄생했다. SK그룹을 이끄는 최태원 회장이다.
그의 아버지인 故 최종현 회장에 대해 업계는 수펙스(SUPEXㆍSuper Excellent)라 평한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키워드로 30년 전 경영 혁신을 이룬 아버지 뒤를 이어 등장한 최 회장은 1998년 38세에 총수에 올라 첫 10여년 간 SK의 외형적 성장에 집중했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기업을 재정립하고 그룹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수출기업으로 전환을 꾀하는 등 공격적 사업 행보로 SK그룹을 재계 순위 3위로 올려놨다.
■ 수감 생활을 기점으로 바뀐 지독했던 기업인
최 회장의 리더십 전반기와 후반기는 그의 수감생활을 기준으로 가를 수 있다. 횡령 등으로 재판을 받은 최 회장은 1심과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2015년 8월 14일 특별사면됐다. 이후 그는 사회적 가치와 행복을 중심으로 그룹을 운영해 나아가고 있다. 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공식적으로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추구 경영’은 2016년 최 회장이 “기업이 이윤만 추구하다가는 돌연사(sudden death)할 수 있다”고 진단한 뒤 출발했다. 그러나 SK그룹 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이 이미 수감시절부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관심을 뒀다고 말한다. 감옥이, 강했고 수익을 좇았던 한 리더를 사회적 책임과 행복을 추구하는 이로 바꾼 셈이다. 실제 그는 수감생활 중 사회적 기업과 관련한 저서를 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주변 사람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 평가한다. 최 회장 스스로도 사람이 자신을 바꿔놨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5월 열린 ‘소셜 밸류 커넥트 2019’에서 자신은 지독한 기업인이었고 착한 사람과 거리가 멀었다면서 “저와 아주 반대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돈 이런 것은 전혀 관심 없고 전부 사람이었다. 저는 공감 능력은 없지만 어떻게든 배워서 이 세상에 있는 문제를 통해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것이 저한테 목표가 됐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다”고 설명한 바다.
이유야 어찌됐든 최 회장은 바뀌었고,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행복’ ‘사회적 가치’를 빼놓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리더십, 정형화된 대기업 틀에서 일해오던 임원들이 진을 뺐다는 푸념도 들려오지만 최 회장의 시선은 꼿꼿이 세상과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장애인 채용 약속을 지켰고 중국 사업장에서도 직원 행복을 추구하는 토크를 벌였다. 올해 초 가진 ‘행복토크’에서 직원들을 가리키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최 회장의 모습은 모두가 행복한 경영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꿈을 꾸게 한다.
■ 2주에 한번씩 직원들과 만나는 대기업 수장, 사회적 가치의 도착지는 결국 행복
자산 200억원대, 재계 3위인 그룹을 이끄는 수장답게 최 회장의 주문은 명확했다. 올해 신년회에서 최 회장은 사회와 SK 구성원이 함께 행복을 키워 나가는 4가지 행동원칙을 제안하고 나섰다. 회사의 제도 기준을 관리에서 행복으로 바꾸는 것, 평가 요소 중 사회적가치 비중을 50% 늘리는 것, 구성원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 작은 실천 방법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 등이다. 그 중심에는 기업 구성원이 이뤄가는 행복이 있다. 최 회장은 구성원이 자발적인 행복을 추구할 때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이룰 수 있고, 외부와도 상생하고 공유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사회적 기업가를 육성하고자 나섰고, 이들이 자본시장을 형성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단적인 예로 SK사회공헌 전문재단인 ‘행복나눔재단’은 직접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400개에 달하는 파트너 사회적기업에 임팩트투자(Impact Investing), 판로지원, 인센티브 지원 등을 추진 중이다. 이 뿐일까. 무수히 많은 SK의 사업적 기회와 방향이 모두 사회적 가치 추구를 통해 새로운 경제로 전환하는 것에 쏠려 있다. 그리고 이는 곧 모두의 삶을 생각하는 리더십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올해 초부터 주 2회씩 직원들과 만나는 스킨십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핵심 계열사 CEO들과도 격의 없는 토론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알려진다. 이미 그가 발휘하는 인재 활용 및 소통 리더십은 글로벌 수준인 셈이다.
더욱 기대할 만한 점은 세계의 기업들도 SK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추구를 통한 경제적 가치 전환’은 기업의 미래와 방향성을 정할 수 있는 지표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생각과 가치관에 자꾸만 재계의 시선이 모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해서 즐기고 누리는 것은 좋지만 이를 위해 경쟁, 물질, 권력 등에 중독되면 오히려 행복에서 멀어지게 된다. 행복한 성공은 경쟁과 물질 등의 탐닉을 절제하고 사회와 공동체에 기꺼이 성공의 결과물을 나누는 삶을 실천할 때 가능하다” (2017년 SK그룹 신입사원과 대화 행사 中)
■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
최태원 회장이 법정구속 되기 전부터 이 책을 집필해왔다는 것이 SK그룹의 설명.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그간 고민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 활성화 방안을 정리했다. 그 핵심은 성과 측정과 이에 따른 인센티브제 도입, 사회적 기업 생태계 활성화다. 그는 변화가 필요한 이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시스템, 스스로 몸으로 부딪쳐 얻은 교훈 등을 빼곡이 적어두고 있다. 최 회장은 이 책을 내놓은 뒤 더 구체화되고 다각화된 방향성과 제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이 책은 SK와 최 회장의 사회적 기업 초석을 닦은 생각들이 담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