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 영화
여행은 여러 설렘과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서 보는 새로운 장소는 골목 하나, 의자 하나도 신선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설렘을 주는 새로움은 사람일 것이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가 궁금하고, 동시에 나 역시도 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해 나갈지 기대를 하게한다.
1996년 개봉됐던 영화 ‘비포 선 라이즈’는 아마 이런 여행자의 설렘을 증폭시킨 영화가 아닐까 싶다.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줄리 델피)와 비엔나로 향하는 제시(에단 호크)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짧은 시간에 서로에게 빠져든다. “나와 함께 비엔나에 내려요”라는 제시의 말에 둘은 그림 같은 도시 비엔나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영화는 둘이 거리를 걷고 술을 마시고, 잔디에 누워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따라간다. 결국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들은 헤어진다.
이후 ‘비포 선셋’(2004년)과 ‘비포 미드나잇’(2013년)이 개봉하며, 둘의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만, 하룻밤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린 ‘비포 선 라이즈’만큼 설렘을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비포 선 라이즈’는 여전히 새로운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날 기대를 하는 이들에게는 고전처럼 봐야할 영화가 되었고, 사랑에 대한 DNA가 사라짐을 느끼는 이들이 이를 재생하기 위해 다시 보기를 반복하는 영화가 되었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비포 선 라이즈’처럼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극히 낮은 확률이다. 오히려 자신의 여행 성향을 파악하며 가는 것이 확률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행의 심리학’에서는 여행도 이유와 자신의 유형을 알아야 즐거울 수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셀린과 제시는 비엔나에서 내릴 당시 그 유형이 일치했을 수도 있다.
■ 김명철의 ‘여행의 심리학’
심리학자 김명철 작가는 첫 여행에서 ‘회의’를 느꼈고, 그 경험이 여행과 여행자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의 심리학’은 심리학과 여행을 결합하고 거기에 저자의 여행 경험을 털어넣었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늘 우리가 해왔던 의문들이다. ‘여행만 같이 갔다 하면 친구를 잃는다’ ‘첫 여행으로 패키지여행이 좋을까 자유여행이 좋을까’ ‘여행의 행복은 얼마나 갈까’ ‘혼자 떠난 여행에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성격 따라 숙소 고르는 법도 달라진다’ ‘왜들 그렇게 여행이 좋다는 걸까’ ‘라면을 꼭 싸가야 할까, 싸가야 한다면 얼마나 가져가면 좋을까’ 등이다.
이를 통해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여행 유형을 탐색하고, 이를 통해 여행 불만족을 막으며, 좀더 풍요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여행 방식을 뒤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이드북’을 챙겼지, ‘왜’라는 질문을 사실 크게 던져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앞서 작가가 던진 질문들이 만들어진 셈이다. 관광지를 보러가는 친구와 맛집을 찾아다니는 친구가 같이 간다면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가. 어쩌면 ‘비포 선 라이즈’의 연인들은 외로움에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 결과로 과감하게 비엔나에서 하룻밤 데이트를 즐겼을지 모른다. 셀린이 기차 타는 것을 즐기는 유형이었다면, 현실에서는 ‘찰나의 만남’으로 끝났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