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대화의 희열'
사진=KBS '대화의 희열'

국내 의료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전국민이 다 아는 아주대학교병원의 이국종 권역외상센터장이다. 그는 두말 할 필요없이 생명을 지키는 리더다. 그는 중증외상센터에 개입된 경제적 논리, 응급의학전문의 기피현상 속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의사로서 꿋꿋이 제 목소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 아래서 사람을 지키고자 목소리를 내는 이국종 센터장은 괄시당하던 자신에게 힘을 준 한 의사의 말에 따라 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

이국종 센터장은 형편이 아주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야 했다. 무엇보다 아버지를 향한 괄시의 시선을 어린 이국종까지 감내해야 했다.

참전용사 출신 아버지는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치며 장애인이 됐고, 이국종 센터장은 “병신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사회적인 놀림과 시선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국종 센터장은 EBS ‘스쿨랜드-틴틴인터뷰’에 출연해 의사가 되고자 마음먹었던 때를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중학생 시절 축농증을 심하게 앓아 병원을 찾았다가 싸늘한 반응을 마주해야 했다. 국가 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꺼내자 문전박대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 병원을 전전하던 그는 이학산이란 이름의 외과 의사를 만나게 된다. 이 의사는 중학생 이국종이 내민 의료복지 카드를 보고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라면서 무료 치료를 해주곤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돼라”고 말했다. 그 뒤 이국종 센터장의 삶의 지표는 바뀌었다. 그는 “의사가 되면 굉장히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한 명 한 명 잘 봐주면, 그 사람들이 나중에 사회로 돌아가서 (다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환자를 진료하는 그 자체가 봉사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밝힌 바다.

사진=흐름출판
사진=흐름출판

드라마같은 일화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덕분일까. 의사가 된 뒤 그의 삶 역시 여느 의사들과는 달랐다. 부를 축적하고자 함도, 집안을 일으켜보고자 함도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사회적 명예를 얻기 위해, 대를 잇기 위해 의사가 되는 수많은 이들 사이에서 이국종 센터장이 하는 말은 그가 왜 이 시대의 빛나는 리더인지 실감케 한다.

“구조구급대가 아무리 빨리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도 환자는 살지 못했다. 환자의 상태를 판단할 기준은 헐거웠고, 적합한 병원에 대한 정보는 미약했다. 환자는 때로 가야 할 곳을 두고 가지 말아야 될 곳으로 옮겨졌고, 머물지 말아야 할 곳에서 받지 않아도 되는 검사들을 기다렸다. 그 후에도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고 옮겨지다 무의미한 침상에서 목숨이 사그라들었다. 그 사이에 살 수 있는 환자들이 죽어나갔다. 선진국 기준으로 모두 ‘예방 가능한 사망’이었다.

내 환자들이 숨을 거둘 때 살이 베어나가듯 쓰렸고, 보호자들의 울음은 귓가에 잔향처럼 남았다. 죽음과 눈물이 일상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손끝에서 죽어간 환자들의 수를 머릿속으로 헤아리는 짓을 그만두었다” (-‘골든아워’ 中)

오직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한 명의 환자라도 살려보고자 가장 고된 길을 선택한 그다. 좋은 기억 하나 없다는 어린시절을 겪은 후 부와 명예만 좇는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이국종은 없었을 것이다.

이국종 센터장은 선진국 시스템까진 아니더라도 적기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응급헬기 도입을 그토록 원해왔다. 그리고 응급헬기의 도입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2011년 1월,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살린 후 8개월만에 국내에 처음으로 닥터헬기가 도입됐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소방헬기를 빌려 써왔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31일, 전국 최초 24시간 운영하는 닥터 헬기가 경기도청 위로 떠올랐다. 이 닥터 헬기는 1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해야 하는 중증 외상 환자들에게 '골든 타임'을 지키게 해주는 구세주다. 그러나 난관은 계속되고 있다. 24시간 운영이라는 점 자체부터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야 한다는 점은 인근 주민들의 소리에 대한 평화를 지키지 못한다는 민원에 시달린다. 또 환자와 헬기가 만나는 인계점이 많아야 하지만 국내 실정은 그렇지 못한 편이다. 이같은 어려움에서도 이국종 센터장은 오직 ‘사람 목숨이 먼저인 사회’를 외치고 있다.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는 일념으로 사회의 크고 작은 불만과 어려움, 병원의 경제우선주의들을 하나씩 부숴나가고 있다.

사진=흐름출판
사진=흐름출판

■ ‘골든아워’

‘골든타임’ ‘아덴만 작전’ ‘북한 귀순병 총격사건’ 등을 통해 전국민이 알게 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 이국종이 쓴 책 ‘골든아워’ 1, 2편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의 중증외상센터 기록을 담은 이국종의 산문집이다. 대한민국 중증외상 의료 현실에 대한 냉정한 보고서이자, 시스템이 기능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려 애써온 사람들-의료진, 소방대원, 군인 등-의 분투가 가슴 먹먹하게 담겨 있다.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분투, 국내 의료인들의 현실을 전하는 그의 진심은 독자들에게도 통했다. 그러나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거나 몇 부가 팔렸다거나 하는 가십성 관심을 떠나 독자들 가슴 속에 깊게 박히는 여운이 오래토록 남는 책이다. 무엇보다 히어로라고까지 불리는 이국종이 한 인간으로서 적어내려간 고백은 그가 닦아 놓은 길을 앞으로의 사회가 책임지고 열어가야 한다는 뼈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언젠가는 내게도 끝이 올 것이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이 중증 외상 센터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 몸은 조금씩 부서져 가기 시작했다. 끝이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골든아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