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작가] 서울 곳곳 문화유산을 달리 보게 만드는 이 사람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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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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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이면 광복절이 74주년을 맞는다. 광복절은 나라의 소중함, 혼란의 시대에 지켜낸 문화유산들의 가치가 달리 보이는 때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들은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이리라. 서울의 한 풍경으로 자리해 있는 문화유산들은 각각의 의미와 가치가 다르다. 광복절 74주년을 맞아 서울 곳곳 문화유산의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되짚어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한다.
이기봉의 ‘임금의 도시’는 서울의 문화유산을 색다르게 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만드는 책이다. ‘임금의 도시’는 문화유산과 전통건축물의 배경으로만 머물렀던 풍경과 역사의 공간적 무대로만 여겨진 장소성을 주인공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던져준다. 저자는 책을 통해 서울에서 개성과 경주로, 조선에서 고려와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저자는 평면적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다채롭게 펼쳐지는 공간과 풍경 그리고 건축에 얽힌 다양한 질문들을 던진다.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 거쳐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내놓은 ‘임금의 도시’는 우리의 다양한 문화유산, 궁궐, 사찰, 탑, 성곽, 정원 등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주며 저자가 이해하는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특히 역사를 이해해야 도시의 풍경이 더욱 잘 보이는 것이라 말한다.
“옛 사람들의 도시를 볼 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걸어다닌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말 타고 다니고, 막 달릴 것 같지만 달리는 경우는 없다. 달리는 사람들은 낮은 위치의 사람들이다. 임금도, 양반도 모두 천천히 가는 게 훨씬 권위가 있었다. 때문에 옛날에는 기본적으로 걸어 다닌다는 입장에서 도시를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그것의 핵심은 ‘임금이 되는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받아서 된 것이다’라는 것이다. 전통 시대에는 권위를 합리화시킬 때 하늘을 빼놓을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담아내서 설계한 것이 옛 도시의 모습인데 요즘은 이같은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일례로 우리가 경복궁을 갈 때는 주차장으로 향하든지,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나. 전통시대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다니지 않았기에 우리는 문화유산 답사에서 걸어서 가는 길의 풍경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 역사를 알 때, 건축물의 이면이 보인다
역사 건축물과 옛 풍경을 지닌 도시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만든 책. 이 안에는 조선시대 궁을 작게 지은 이유, 산성의 성벽이 높지 않은 이유 등 건축물에 담긴 의미부터 풍수가 갖는 의의까지 모두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함께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양을 만들 당시 사람들은 기존의 경사도를 이용한 산성을 생각하며 성벽을 만들었다. 높이가 평지의 절반만 되도 높아 보이는 경사지의 성벽만 생각하고 평지에도 낮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성벽은 방어력이 없다는 인식을 미처 갖지 못했고, 이를 확인한 것은 선조 시대의 임진왜란 때였다. 20만 대군이 쳐들어오는 일을 상상한 적 없던 사람들이 왜란이 터지고서야 방어력이 없다는 걸 확인했고, 행주산성에서의 승리를 체감한 후에야 산성과 성벽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병자호란 때 거듭 이를 확인한 조선왕조는 광해군 때 남한산성 같은 산성을 전국 곳곳에 배치했다. 우리가 산책로로 거닐며 각기 다른 높이의 성벽을 마주하는 풍경 안에 이같은 역사적 사실과 사건들이 뒤섞여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 시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보신각에도 임금의 권위와 안위를 위한 결정이 담겨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현대의 우리는 보신각은 지나다니며 볼 수 있는 종이고, 역사 유물일 뿐이다. 연말 새해를 알리며 울어주는 정도의 역할이 전부지만 옛 시대에는 서울 시내 전체를 통제하는 가장 묵직한 울림이었다.
“임금이 사는 도시는 언제든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통제가 절실했다. 서울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통제가 가장 엄격히 이뤄져야 했던 공간이었던 셈이다. 다른 문명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볼까.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란 가사에서 학교 종은 즐거운 소리일까? 아니다. 풀이하자면 ‘안 들어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서울도 통제를 해야 했다. 낮에는 눈으로 보면서 군인들이 돌아다니며 통제가 가능했지만 밤은 그렇지 않다. 중종반정도, 인조반정도 밤에 일어났다. 밤에 통제가 엄격할 수밖에 없는데 정확한 시간에 도시 전체에 통제를 알려줄 도구가 필요했다. 그 해결책이 소리였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보신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서울 곳곳에 현대와 녹아 들어있는 문화 유산의 유래와 그 안에 담긴 권력과 권위의 의미를 되짚는다. 단순히 남아 있는 건축물로만 보기보다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접점에서 빚어지는 역사적·정치적 코드가 시각화된 강렬한 상징임을 아는 순간, 독자는 또다른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장소와 풍경에 얽힌 다양한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역사 이해와 문화유산 감상을 할 수 있는 길이 ‘임금의 도시’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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