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의 발견] 눈물나도록 유쾌한 성장소설, 사춘기를 위로해 '가시고백'

안소정 기자 승인 2024.09.27 16:50 | 최종 수정 2024.12.02 14:35 의견 0

[리드어스=이재우 기자] 책 마지막장을 넘기자마자 친구를 향해 양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내밀었다.

"꼭 읽어봐라. 꼭"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전작 '완득이' 읽을 때와 다를 바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뚝뚝 떨어지는 굵은 눈물방울에 적잖이 놀랬더랬다.

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강도가 아니니 흉기를 지녀서는 안 되며 사람을 해쳐도 안된다. 몸에 지닌 지갑이나 가방에 손을 대는 소매치기 날치기도 아니다. 나는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완득이'로 대변되는 김려령 작가의 '가시고백'이다.

글 첫머리부터 강렬하게 '나는 도둑'이라고 고백하는 화자는 예민한 손을 가진, 천부적으로 타고난 도둑이다.

전작 '완득이'가 그랬듯이 '가시고백'도 책장을 폄과 동시에 성장 냄새가 물씬 나는 작품이다.

청소년(어떤 유형의 아이들일지라도)을 바라보는 김려령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것은 전경린 작가가 여성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통째로 애정 어린 것과도 마주한다.

'완득이'를 통해 어떤 아이의 어떤 성장이라도 그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통증과 함께 성장하는 청소년을 보여준 김려령 작가는 손이 자연스럽고 우아한 아이 해일을 통해 또 다른 유형의 성장과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이 책 '가시고백'에서 인상적인 등장인물은 감정설계사라는 직업을 설계하는 해일의 형 해철이다.

"감정을 설계하지 않는 자,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해철의 홈페이지 대문에 장엄하게 씌여 있는 글귀다. 사이비 교주 냄새가 폴폴 나는 저 문구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모든 감정은 효율적으로 분배돼야 한단다. 감정 빈익빈부익부현상으로, 발달된 감정은 계속 커지고 덜 발달된 감정은 점점 작아지다 아예 소멸될 수도 있다고. 기쁨, 사랑, 슬픔, 질투, 공포, 등등 어느 하나라도 과하거나 부족하면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경고하는, 검증되지 않은 보양식을 억지로 먹은 것 같은 찝찝함을 과도하게 확장시키는 경고였다.

"감정은 잘 다스려야 해요. 질투나 시기가 지나치면 인격살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거든요. 저보다 잘났든 못났든 조롱하고 야금야금 씹죠. 그거 결국 둘 다 죽는 거예요"

군대에서 수류탄을 숨겨와 "이 식당을 폭파시키겠습니다!"라고 위협하는 것에 준한 충격이었다.

"너 왜 그러냐?"

아버지가 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더랬다.

"감정 분포가 잘못된 사람은 모든 기준이 자기인 줄 알아요. 그런 사람일수록 저만 잘 먹고 싶어 하죠. 같이 굶어 죽으며 죽었지 남 잘 먹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거예요. 감정설계는 그런 사람이 제일 먼저 받아야 해요. 자기 무덤 자기가 더 깊게 파기 전에."

일찍이 해일의 형 해철만한 존재감을 가진 주변 인물로는 박찬욱 중편소설 '동정없는 세상'의 삼촌 되시겠다.

주인공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면면까지 재기발랄한 면모를 두루갖춘 김려령 소설이 이토록 흥미로운 건, 요즘들어 성장소설, 그것도 남자 청소년들이 주인공이 된 성장소설에 엄청난 재미를 느끼고 있는 터다.

생각해보시길… 우리의 청소년 시절이 얼마나 패기에 넘쳤고 열정적이었으며, 일상 속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을 추구했었는지.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02월 05일 출간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02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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