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혹은 즐길 권리가 있다. 설령 그 인생을 무방비 속에 방치해 둔 다고해도 그 권리와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으니 어떤 누구도 다른 이를 탓하거나 비난하거나 판단하거나 혹은 평가할 권리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많은 순간, 너무도 간단하게 혹은 너무나 편협한 시각으로 남을 평가하는데 익숙해있다. 어떤 가능성을 열어 둔 평가 그 자체의 평가가 아니라 폄하 혹은 폄훼를 염두에 둔 악의적인 판단이자 그거 뒷담화인 셈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인생으로부터 얻는, 확신에 찬 교훈 중 하나는 어느 누구도 순간의 편린으로 평가하지 말자는 것이다. 누군가를 내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는 순간 편견의 사슬 속에 스스로 갇혀버린 다는 사실 또한 간과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성숙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 책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평생 결혼 혹은 연애를 하지 않은 90세 노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이야기다.

1982년 라틴 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와 원시 토착 신화의 마술 같은 상상력을 결합한 ‘백년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90세에 이른 작가가 90세의 노인의 14세 소녀에 대한 사랑을 그려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연상한 독자들의 섣부른 상상처럼 저속하거나 비루하지 않다. 숱한 창녀들을 상대하면서 동물적인 본능으로서의 연애만 충족시킬 뿐 감정적 연애는 극구 마다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아흔살이 되는 기념으로 처녀와 관계를 자신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사창가의 여자 포주(너무나 인간적인) 로사 카바르카스에게 이 같은 다짐을 전하고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소위 지식인(주인공의 직업은 신문에 칼럼을 쓰는 기자다)의 역겨운 냄새를 풍기면서 책장을 더 해간다.

이날 만나게 되는 14살의 성명 무상의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것도 소녀의 잠자는 모습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노인은 그 파격적인 사랑의 감정을 칼럼에 담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어느새 그의 자유롭고 파격적인 사랑에 열광하게 된다.

소설의 끝은 결국 창녀로 전락하고 마는 노인의 소녀를 그림으로써 분노와 또한 사랑으로 죽음에 이르는 노인의 모습을 그린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어떠한 학문 혹은 문학적 분석으로 글에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 파격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에 그치고 싶었다. 그것이 편견을 버리고, 평가하는 습관을 타파하고자하는 나의 첫 연습이었기에.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04월 25일 출간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04월 25일 출간

근처 로마 카페에서 저녁을 먹은 후, 눈에 띄는 아무 유곽이나 골라잡아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곤 했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내 일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중요한 정치 거물들이 하룻밤의 연인에게 국가 기별을 털어놓는 식으로 가볍게 입을 놀리면서도, 옆방에 있는 그 누구라도 얇은 판자 칸막이 너머로 엿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독신 생활의 달랠 길 없는 욕망을 홍등가의 고아들과 밤마다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채우고 있다고 사람들이 수근거린다는 사실도 그렇게 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그런 얘기를 잊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람들이 나를 좋게 말한다는 것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소중한 것만을 높이 평가했다

이 대목이다. 주인공은 기자라는 직업상 취재 활동의 일부로,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알게 되었음에도 갈등하지 않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만을 높이 평가하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나는 이토록 합리적인 주인공의 삶을 닮고 싶다.

사람들의 뒷담화나 평가에 위축되지 않는 자신감을 갖고 싶고 싶다.

~가 되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책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가 억지로 읽게 시켰을 때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낭만주의 문학에 빠져들었다. 그 작품들을 통해서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은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버림받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음악 취향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기면서 내가 뒤처지고 늙은 사람임을 깨달았고 우연의 환희를 향해 마음을 열게 되었다.

14세 소녀로부터 느끼게 된, 준비되지 않은 사랑의 감정으로 혼란스러워하는 90세 노인은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게 된 셈이다.

우리는 그렇다. 평생을 살면서도 깨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흔이 되어서 혹은 아흔이 되어서 깨닫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마음의 담장을 낮추고 남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하며 경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지금 한 말에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본다음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당신의 질투심이 불러일으킨 사악한 생각이 사실일지라도, 지금 당장 그 불쌍한 아이를 찾도록 하세요. 한번 엎지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낭만주의는 버려야 한다는 거 잊지 마요. 그녀를 깨우세요. 그리고 당신의 소심함과 인색함의 대가로 악마가 선물한 노새 같은 당신 물건으로 그녀가 흡족해할 때까지 사랑을 안겨주세요. 그러면서 진심 어린 충고로 말을 맺었다. 진심으로 말하는데,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 죽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처지, 상대의 스펙 등과 같은 따위 편견을 버리고 당당히 앞에 설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진심이면 족하다. 바로 그러한 진심과 용기가 결혼으로 이끌어야 할 일이다. 삼십대의 우리는 너무 많이 잘못된 결혼을 선택하고 있다. 그것이 참 슬프다.

나는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울보가 되었다. 채 억누르지 못한 애정에 얽힌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목이 메었기에 델가디나의 꿈을 부지런히 살피는 고독한 기쁨을 버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나 없이 남은 인생을 살아갈 그녀를 상상하면서 느낀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