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버킷리스트' 스틸컷)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다. 장렬하거나, 허무하거나 혹은 감동적이거나. 앞의 두 내용은 보통 액션이나 코믹, 판타지, SF 등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조되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주는 죽음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죽음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긴 쉽지 않다.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버킷리스트’는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에게 뒤가 아닌 앞을 보게 했다. 내가 어떻게 살았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뭘 하고 싶냐를 생각하게 했다. 삶이 후회되는 건 ‘했던 일을 기억하면서’ 하는 게 아니라, ‘해보고 싶지만 안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줬다.

스토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가난하지만 한평생 가정을 위해 헌신을 하며 살아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와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이지만 괴팍한 성격에 아무도 주변에 없는 사업가 애드워드(잭 니콜슨)가 병실에서 만난다. 둘의 공통점은 암 선고를 받고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밖에 삶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애드워드는 우연히 카터가 쓴 버킷리스트를 보게 되고, 같이 실천해보자며 여행을 떠난다.

두 사람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중국 만리장성에서 오토바이를 탄다. 또 피라미드와 타지마할 관람, 영구 문신 새기기, 세계 최고 미녀와의 키스 등의 버킷리스트를 지워 나간다. 애드워드의 재력이 되어 가능한 것이지만, 카터의 학식과 인품이 있어서 진행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도 많았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두 어르신의 버킷리스트 달성 후 맞이한 죽음은 그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카터는 다른 이를 위해 살았고, 애드워드는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 그 둘이 합쳐 서로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사는 인생을 교환했다.

영화 ‘버킷리스트’는 자연스럽게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를 결심했다’를 떠올리게 했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또다른 여정이기 때문이다.

■ 하야마 아마리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의 제목은 해석하기에 따라 달리 보인다.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가 자살로 비춰질 수도, 1년을 살아보고 그 상황에 따라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작은 전자였다.

이 책은 작가 하야마 아마리의 자전적 에세이다. 스물아홉의 나이였던 저자는 변변한 직장도 없고, 애인에게는 버림받았으며, 몸무게도 73킬로그램 정도로 스스로 외모에 대해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외톨이였던 저자는 혼자만의 우울한 스물아홉살 생일을 보내던 중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TV에서 펼쳐지던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멋진 순간을 본 후 생각이 바뀐다. 그 분위기를 맛 본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스스로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한다.

저자는 라스베이거스에 가는 것을 목표로 치열하게 돈을 벌기 시작한다. 목표는 2000만엔이다. 그리고 결국 성취한다. 결과는 읽고 확인하는 게 좋다. 어떤 이에게는 한숨을 어떤 이에게는 멋짐을 주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란 건 어쩌면 투명한 막에 가려진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 투명 막을 뚫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치도록 무섭지만,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또 하나의 평범한 세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전제로 한 목표는 삶을 더 생동감 있게 움직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