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게 최선입니까?

박희린 기자 승인 2022.08.01 08:00 의견 0
(사진=PIXA BAY)

특별히 방황이랄 것도 없이 보낸 나의 사춘기 시절에 반추해 봤을 때 ‘요즘’ 아이들의 비행은 끔찍할 정도다. 친구를 괴롭히는 모양새가 그렇고, 인생을 허비하는 과감함이 또한 그렇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는 하지만 그 짧은 시절, 기껏해야 호르몬에 조정 당하는 것 치고는 인생 전체에 너무나 큰 상처를 안아야 한다. 인생 전체에 있어서 넘을 수 없는 고비를 스스로 쌓는 것과도 같다. 이 시기에 이와 같은 방황을 꼭 해야만 하는 걸까.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여기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집을 나간 아이가 있다. 가출 소녀들이 의례히 그렇듯 서울의 도심을 전전했다. 마땅히 몸을 눕힐 숙소도 얻지 못한 채 건물 계단에서 잠을 청하던 아이들은 결국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 도움의 손길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은 손길을 뿌리치지 않는다.

집을 나왔던 아이들은 바깥 세상에 지쳐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간 아이들에게 모두 집이 안식처는 아니다. 어떤 아이는 부모로부터 호되게 학대를 받고, 어떤 아이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또 다시 쓸쓸해진다. 그 중에서도 부모의 극진한 관심과 후원 속에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집이라는 안식처에서 안전을 보장 받았는가?

“엄마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은 대부분 유치했고, 지혜로운 대답은 대부분 비겁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또 그들만의 리그에서 철저히 갈림길에 놓인다. 부모의 후원 속에서 잘못 조차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아이는 친구들 위에 군림한다. 그러는 사이 울타리의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서열이 어디쯤인지 적당히 눈치를 채고 자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질문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홀로서기의 과정 속에서 혼돈을 겪고, 그 혼돈 속에서 혹독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갈 뿐이다.

“비행기 한 대가 불을 밝히고 밤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중력도 거스르고, 시간도 거스르고, 날씨도 거스르고. 그 비행기는 어떤 장소에 도착할까. 모르는 사람들과 모르는 건물들과 모르는 하늘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무런 질문도 대답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책은 세 소녀의 방황의 과정을 요즘 말로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영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어른의 심정을 나는 느꼈다.

결국 군림하는 친구의 폭주를 못 이긴 아이는 살인을 계획한다. ‘소녀’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는 이들의 세계는 그렇게 끔찍하게 나쁜 어른들의 전철을 밟아간다.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사진=박희린 기자)


‘최선의 삶’이라는 제목의 책은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모양이다. 영상 매체에서 이 책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답을 내어주지 않은 채, 어떤 것이 최선이었는지 길을 보여주지 않은 채 마무리 된 책에 내심 걱정이 앞선다.

‘요즘’ 아이들의 ‘못된’ 습성이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최선이었다고 말 하는 것 같아 영 마뜩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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