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굿즈 제작 및 판매 사업을 하는 에이치플래닛의 황현준(32) 대표는 사업 10년 차다. 20대 초반 다니던 회사의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어느덧 10년 차가 됐다. 10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이 버텨내기에는 지독하게도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젊은 그는 10년 이라는 시간 동안 버티면서 온 몸으로 그리고 영혼으로 ‘사업’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원래 제가 사업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었어요. 제가 고졸이에요. 고졸에 어떻게 보면 문제를 좀 많이 일으켰던, 공부도 안 한 아이였거든요. 그렇다보니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문제를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크게 비행을 저지르거나 하는 청소년은 아니었다. 보통의 고등학생과 같이 입시를 바라보며 달려가지 않았을 뿐이고, 철학에 빠졌을 뿐이다. 그것을 학교와 가족들은 ‘다르게’ 바라본 게 아니라 ‘틀리게’ 바라본 것이다. 그 때문에 황 대표도 스스로 ‘문제 아이’라는 낙인을 찍은 듯 보였다.
“20대가 되고 마케팅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어요. 나도 모르는 마케팅을 회사 대표님에게 ‘이거 좋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이 안나오더라고요. 나도 모르고 대표님도 모르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하다가 대표님한테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씀드리니까 이제 선뜻 나서기 어려워하시더라고요. 마케팅에는 비용이 발생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연습을 해 봐야겠다’ 했던 거죠. 회사에서는 ‘그런 거 하지 말고 일이나 해’라는 분위기다 보니까…제 사업자를 만들고 거기에 제가 하고 싶었던 광고들을 해보면 성과를 알 수 있잖아요. 그러면 설득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사실은 너무 적은 돈으로 시작했어요. 150만 원 그때 월급 받은 걸로, 첫 월급으로 만들었던 거죠. 만들어서 제가 광고를 해 보니까 되는 거예요”
다니던 회사의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서 시작한 사업은 황 대표의 인생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렇게 직접 수행해보고 결과 값을 얻어낸 후에야 회사에 자신 있게 제안을 했다. 하지만 정작 회사에서는 황 대표의 의사를 오해했다. 회사에서 독립해서 따로 클라이언트들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때 오해를 받으면서 회사를 나오게 됐어요. 마케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와서 쇼핑몰 창업을 한 것이죠. 그때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남들이랑 비교했을 때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내 강점을 찾는 게 중요했어요. 본질적으로 보는 것들을 좀 이용해서 아이템들을 서치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처음 시작했던 게 휴대폰 케이스였어요”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탄탄대로였다.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크게 성장할 것 같았지만 대외 활동을 하지 않던 그를 둘러싼 소문이 문제였다.
“제가 미팅을 안 했거든요. 외부 사람들을 안 만나다 보니까 소문이 난 거죠. 제가 40대고 페라리를 끌고 다니고 술주정뱅이에 돈이 엄청 많은 집안 사람라고요. 저는 실질적으로는 월세 오피스텔 살면서 했었는데 보여 지는 것만 크게 부풀려졌던 거죠. 실질적으로는 매출이 월 2~3000만 원이었는데 외부에서 저희를 봤을 때는 월5억에서 10억 정도로 보인 거예요. 어쨌든 ‘이제 열심히만 하면 되겠다’ 생각하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업계 1위가 저희를 공격하더라고요. 저희가 규모가 큰 줄 알고 저희가 판매하고 있는 제품의 80%를 다 할인을 하더라고요. 그때 저희가 거의 폐업 직전까지 갔었고 그러면서 대출을 받기 시작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그때 제가 빚이 5억 정도가 생겼어요. 그때가 스물네 살이었습니다”
■ “힘들다는 생각조차 못해”…10억 빚 짊어진 스물네 살
“‘접을까?’ 생각 하다가 그냥 계속 쭉 했었던 거죠. 빚이 5억에서 계속 늘어났었어요. 최종적으로 빚이 10억 조금 안 됐었나? 했는데 그걸 스물여덟 살, 아홉 살 때 다 갚았던 거죠. 그때는 갚는 거에만 집중했고 폐업하지 않기 위해서 좀 아등바등 했던 거 같아요”
스물 네 살의 황현준 대표에게 빚을 갚는 4~5년여의 기간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이른 결혼으로 이미 아이까지 태어났기 때문에 가족의 희생 또한 동반했어야 했다.
“그때 사람이기를 포기했었어요. 힘들 때마다 ‘내가 사람이 아닌데 왜 힘들지’라는 생각했었어요. 그때 아기도 있었거든요. 와이프도 어렸고 아기도 갓난아기고…저도 아이를 돌보고 싶었는데 돌보자니 저는 두 개를 다 못 잡겠는 거죠. 그래서 아이가 세 살 때까지는 거의 인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나쁜 아빠였어요. 회사만 살리기 위해서 일해야 했거든요”
스물 네 살, 어린 나이다. 누군가는 학교에 다니며 아직도 배우고 있을 때이고, 누군가는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을 나이다. 그 어린 나이에 10억 원의 빚과 가족까지 짊어져야 했던 황 대표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멘토가 있다.
“제가 항상 제사를 지내요. 내가 나중에 죽게 되면 조상님 옆에 묻힐 텐데 그러면 적어도 거기에서 ‘창피하지는 말아야 겠다’는 게 첫 번째였고요. 그리고 제가 죽어서 조상님 옆에 묻히면 제 자식들도 거기 옆에 묻힐 텐데 제가 좀 그것 때문에 버틴 것도 있었어요. 장남이고 장손이고 좀 약간 집안 전체를 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요. 어떻게 보면 그 안에 제가 없었던 거죠. 제가 없고 우리 것을 살려야겠다는 그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 빚 갚아보니 돈 버는 자신감 생겨
그렇게 4~5년 동안 ‘사람이기를 포기’한 황 대표는 사업을 이어나가며 빚을 청산했다. 그리고 아내와 가족을 위해서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빚도 다 갚았고 ‘이제 사업 접어야 겠다’ 생각했어요. ‘빚만 갚고 접자. 아이가 있으니까 직장인을 하자. 조금 안정적으로 하자’ 마음먹었었는데 빚 갚으니까 ‘어? 다시 대출받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 딱 느낀 거죠 ‘아! 난 숙명이구나’라고요. 그래서 ‘숙명이고 받아들이자’라고 인정을 했어요”
황 대표는 스스로를 “계절에 앞서 꽃을 피웠다”라고 평가했다. 개화는 했는데 너무 일찍 펴서 예쁘지 않은 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제 옛날 모습을 뒤돌아봐도 좀 꽃이 일찍 핀 케이스에요. 개화시기를 앞당겨서 꽃이 핀 거죠. 근데 그 꽃 예쁘지 않은 느낌인 거죠. 꽃은 미완성됐는데 피기만 한 거예요. ‘어떻게 하면 다시 좀 예쁘게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이 꽃을 지게하면 다시 피게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조금 은유적으로 표현했던 건데 새로운 가치에 조금 목이 말라 있었어요. 돈 벌고 그런 거는 이제 계속하면 되는 거고 자신이 있더라고요. 빚을 갚아 보니까… 그러니까 돈 버는 건 됐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무언가를 해 보자라고 했던 그 시점 때 3.1운동을 본 거죠. 내가 무조건 이 사업을 해서 진짜 좀 가치 있게 살아 보자는 생각을 해서 맨즈를 하게 되었던 거죠”
맨즈는 대한민국 굿즈 중에서 스마트폰 소비재를 판매하는 사이트다. 스마트폰 액세서리 같은 경우 상당수 소비층이 젊고, 여성인 경우가 많다.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이거를 계속 바꿔 가면서 하는 소비 패턴을 보이는 품목인데, 맨즈의 제품 같은 경우 이와 같은 트렌드를 거스른다.
“일반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였으면 신제품도 계속 내고, 시즌에 따라서 패키지도 바꿔주면서 할텐데 저는 일단은 그런 거에 조금 지친 것도 있었어요. 본질적인 것에만 초점을 두었죠. 어떻게 보면 좀 다른 회사들에 비해서는 새로운 제품을 많이 선보이지는 못해요. 대신에 본질에 맞춘 활동을 그만큼 많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후원활동이라든지…금전적으로 후원하는 거 외에도 저희가 재능기부를 많이 하거든요”
맨즈는 판매 수익금의 30% 이상을 애국 관련 단체에 기부한다. 좋은 활동인 건 분명히 맞는데 회사로서는 재투자의 기회가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황현준 대표 개인으로서도 개인의 부를 쌓을 기회가 없어지는 셈이다.
“저는 맨즈 외에 다른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어요. 그걸로 법인을 키워 나가는 거고 맨즈는 이 상태에서 기부 활동을 많이 하는 쇼핑몰로 키우고 싶은 겁니다. 만약에 매출만을 고려한다고 하면 조금 더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일장기 찢기 같은 것들 하면 매출이 올라갈 건 알고 있죠. 저도 많이 해 봤으니까… 근데 그렇게 안 하는 것은 브랜드의 격이라고 생각해요. 국가에도 국격이 있듯이 브랜드에도 저는 격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했을 경우에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나라도 그렇게 하지 말자’라는 주의고요. 그냥 국가에서도 어떻게 보면 나라를 위한 것보다는 개인의 이익 때문에 나라가 많이 병들었잖아요. 저도 그렇게 제 개인의 이익만 추구를 한다면 맨즈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어요”
황 대표의 바람은 맨즈를 통해 여러 회사가 애국 단체에 후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나의 회사가 규모를 키워 후원금을 늘리는 것보다 100개의 회사가 십시일반 후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고 그것을 최종 종착점으로 정했다. 일종의 선한 영향력을 퍼트리고 싶다 것이다.
■ 정부정책 몰랐던 20대…“후배들은 잘 알고 했으면”
스물 두 살 때 우연치 않은 계기로 회사를 만들어서 사업을 해온 황 대표에게는 내내 아쉬운 지점이 있다. 너무 어릴 때 막무가내로 사업을 하다 보니 정부 정책에 무지했다는 점이다. 그저 환경에 따라서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돈’에 대한 마인드도 없었다. 그저 ‘내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이 돈에 대한 개념의 전부였던 그는 이제 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단다.
“직원들이 한참 많이 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어떻게 보면 저밖에 바라볼 사람이 없는 거잖아요. ‘돈을 벌어야 되는구나’를 그때 느꼈어요. 그전까지는 그냥 빚만 갚고 또 내 가족 먹고 살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고 했는데 너무 책임져야 될 식구가 많아진 거죠. 그러니까 아 이분들을 위해서 더 해야겠다고 하다 보니까 이제 돈 욕심이 좀 생긴 시작했어요”
드디어 사업가로서 성장을 시작한 그는 후배 사업가들에게 정부 정책에 대해서 잘 알려주기 위해 공부도 시작했다.
“제가 가장 아쉬웠던 것 중에 하나가 정부 정책을 몰랐어요. 그러니까 청년으로서 받을 수 있는 게 너무 많았었는데 하나도 못 받았어요. 제가 그런 것도 모르고 사업자를 폐업했다 또 하니까 자격요건이 안 되고 제가 뒤늦게 알았을 때는 하나도 받을 수 있는 게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새로 사업하시는 분들은 무조건 정책적인 걸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게 크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했던 거였죠. 많이 알려 줘야 되니까. 저는 못 받았지만 (몰라서 못 받는 것은)저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죠”
또 한 가지는 인력 관리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리더십에 대한 정의도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매 순간 부딪히면서 자신만의 리더십을 정착 시킨 황 대표는 이제 쯤 진정한 리더십은 사람 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리더십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후배들에게는 그냥 목숨 걸고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사업이 본인의 사회생활 첫걸음이라고 하면 더더욱 목숨 걸고 해야 됩니다. 그냥 이게 내 전부라고 생각하고 좀 도전해 봤으면 좋겠어요. 20~30대에 즐길 게 많다. 즐길 거 즐기면서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 너무 많아요. 저도 아직도 솔직히 사업은 버거워요. 저와 와이프는 여행도 제대로 못 가보고 결혼반지도 없어요. 결혼반지에 쓸 돈조차 도다 광고비로 쓰려고 했고 결혼식도 못 했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하는 걸 아예 못 했어요. 먹는 것도 제대로 못 해 봤고 ‘라면 먹는 거에 감사하자. 북한을 봐라’ 이런 식으로 많이 하는 성격이 다 보니까 조금 못되기는 했죠. 근데 그렇게 간절하고 악착같이 해도 저조차도 아직도 ‘생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어려운 문제에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렇게 어려운데 하실 수 있겠어요?’라고 먼저 묻고 싶죠”
한 시간 남짓 만나본 황 대표는 나이에 비해 사유가 깊은 인물이다. 이제는 사업에 대한 정의와 리더십에 대한 마인드도 제법 갖춰졌지만 지난 10년 간 오롯이 경험으로 체득한 노하우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제가 회사 소개서를 작성할 때도 우리 회사에 비전 이런 것들을 쓰는 글귀 때 제가 항상 고민이 하거든요. 이 부분 다른 무엇보다 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거든요. 바로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회사에 비전이 뭐냐?’라고 할 때는 저는 사람들인 거 같아요.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핵심인 게 저희 인력들이기 때문에, 저희 인력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더욱더 대한민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다고 하다 보면 그 뜻이 많은 분들이 알아주실 거라 생각하고요. 또 그걸로 인해서 저희가 그냥 사업적인 측면에서 비전으로 바라봤던 아이템을 확장하고 사업 규모를 확장하는 것들은 어차피 기본적으로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마음이 합쳐질 수 있다면 회사는 늘 비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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