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독서 | ②연쇄독서가] 허난설헌과 대척점에 있던 조선 중기 기생 ‘황진이’
안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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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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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영화 속 황진이 역의 송혜교와 하지원
소설가에 의해 복원된 두 인물 허난설헌과 황진이는 조선 중기 남성중심의 가치 체계가 완연하던 시가에 능동적인 삶을 갈망하던 당시 여인상을 조명한다.
조선 중기에는 명나라로부터 친영제 결혼제도가 도입됐다. 어쩌면 허난설헌은 시집살이를 시작한 최초의 여성인지도 모른다. 황진이가 살았던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부친은 제안 황씨의 진사로 알려져 있으나 모친에 대해서는 여염집 맹인이라는 설과 기생이라는 설이 엇갈리고 있다.
‘초희 : 난설헌의 사라진 편지’의 작가 류서재가 황진이를 소설로 불러들인 이유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당시 여성에게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계층은 다르지만 능동적으로 대항하고 나아가는 인물을 그려 넣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희' 본문 중 허난설헌과 황진이가 만나는 대목이다.
또 허균을 통해 엿보이는 서자 제도에 대한 비판을 여성 황진이를 통해 상징하고 있다. 독자들은 서자와 여성으로 대변되는 조선 중기의 약자들이 ‘공격적인 사회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이 계층의 인물들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글로 살려낸 허난설헌과 황진이를 책 속에서 만나게 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한 여자로 하여금 성장하는 다른 여자를 보여준다. 이것은 서자와 여성으로 인해 성장하는 사회를 바랐던 게 아닐까.
전경린 지음 | 이룸 | 2004년 08월 05일 출간
■ 전경린에 의해 살아난 ‘황진이’
2004년 작가 전경린은 소설 ‘황진이’를 내놨다. 이 책은 “전경린 문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책 초반에는 아비의 성을 따르고 어미의 신분을 따라야 했던 당대 제도를 통해 어린 황진이의 비극을 되살린다. ‘초희’의 어린시절과 대척되는 지점이다. 이후 실혼을 한 황진이는 그야말로 ‘살아지는 삶’을 살며 기생의 길을 택한다. 자신의 생을 재단하는 비극적 운명의 굴레에 저항하고자 했던 황진이의 삶은 여기서부터 황진이의 삶은 ‘사는 게’ 됐다.
사는 것으로서의 황진이는 기실 요부다. 지족선사를 파계시킨 일이나 서화담을 향한 공격적인 애정 공세, 전국 유람 중에 벌인 매춘 행위 등은 소설에서 극히 보수적으로 재구성돼 있다. 그러면서도 기생이지만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는 황진이의 몸에 대한 인식은 그녀를 송도삼절로 불리게 된 정신적 절개를 드러낸다.
평온했던 유년과 달리 결혼과 함께 비극을 맞이하고 삶의 시련을 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초희’ 속 허난설헌과 달리 ‘황진이’ 속 황진이는 좀 더 삶을 달관한 듯 보인다. 책 말미에는 세상의 어떤한 미혹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부처의 모습으로 거듭난 황진이가 잔잔하게 숲 속으로 사라져 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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