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발견] “I can bring A LOT to table for this company”
디즈니 최초 한국 수석 디자이너 김미란의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신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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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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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자들의 70%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요즘, 취업난 만큼이나 구인난도 심각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른 채 오롯이 단 하루, 수학능력평가시험을 위해 책 상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른다는 의미기도 하다.
직장에서는 또 어떤가? ‘90년 생이 온다’ 등의 책을 통해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잘 알고 있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일로 만끽할 수 있는 성취감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 꿈을 위해 미국으로 날아간 여성이 있다. 디즈니 최초 한국 수석 디자이너 김미란 씨다. 김미란 씨는 미국에서 여성,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을 열정과 실력만으로 극복한 인물이다. 한국이 평범한 대학생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칼아츠의 문을 두드리고, 졸업 후 워너브라더스에 입사해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올해는 디즈니에서 일한 지 12년째가 되는 해다. 회사에 들어서면 복도 양쪽으로 현재 하는 프로젝트들의 캐릭터 드로잉이라든지 스타일 가이드 디자인 진행 상황, 온갖 종류의 상품 샘플들이 복도를 따라 전시되어 있다. 이런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언제나 새롭게 느껴지는 건, ‘월요병’이란 단어가 아직 와닿지 않을 정도로 나의 일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디즈니에서 보낸 12년> , 12p
내 이전에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거쳐 갔지만 그의 밑에서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그리고 그 친구들을 그리도록 허락받고 이만큼 오래 일한 건 내가 처음이다. 디즈니는 캐릭터에 있어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따라서 미키마우스를 본체 그대로 온 모델On-Model로 그리는 것은 보기보다 쉽지 않다. 캐릭터 아트 분야에 이런 말이 있다.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를 온 모델로 완벽히 그릴 수 있으면 어떤 캐릭터라도 그릴 수 있다.” <나의 직함, ‘리드 캐릭터 아티스트’>, 36p
디즈니에서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 디즈니 공주들의 포즈를 바꾸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파격적인 지침이 내려온 이유는 디즈니의 소비자들, 즉 아이들의 인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희생하는 사랑을 숭고하게 여기는 공주 캐릭터 인기가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디즈니 공주는 더 이상 왕자를 찾지 않는다>, 64~65p
진로를 고민할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일본과 미국의 하청을 받는 정도라 딱히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학자가 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은 많았지만, 애니메이션을 배우러 미국에 가는 유학생은 보기 드물었다. 그런 시기인 만큼 내가 유학을 가서 제대로 공부해보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로를 고민하다>, 96p
담당자가 얼마 정도의 연봉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내가 원하는 연봉과 그 이유를 덧붙여 말한다. 나는 담당자와의 사이에서 숫자가 너무 자주 오가기 전에, 조용히, 하지만 자신 있는 목소리로 명료하게 말했다.
“As you see clearly in my portfolio, I can bring A LOT to table for this company. (제 포트폴리오를 보시면 분명하게 아시겠지만, 저는 아주 많은 것을 이 회사에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디즈니에서의 첫 번째 딜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디즈니에서의 갈림길>, 2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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