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길] 역사는 왜 여전히, 잘 팔리는 아이템인가

이지영 기자 승인 2021.08.11 10:10 의견 0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소위 폭망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멀쩡히 운영되던 기업체도 연관된 거래처의 추락에 속절없이 뒷덜미를 잡혀 쓰러지기 일쑤다. 때문에 현 시대는 본인만 잘해서도 안되고 남을 배척하는 일은 더더욱 안된다고 가르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채찍질해 사회의 변화에 맞춰 바뀌겠다는 태도로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남을 배척하기보다는 사람, 기업과 어떻게 잘 관계를 다져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질 수 있는지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사회에서 잘 살아가는 법, 사회에 어울리는 자신을 만드는 법을 향해 헤맨다.

내가 아는 한 선배도 마찬가지다. 호기롭게 사업에 뛰어들어 남들 다 겪는다는 경제 위기에서 함께 흔들리고 휘청대고 있는데 어느 날 식사자리에 사마천의 ‘사기’를 들고 나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약속장소에 오면서 읽었다는 선배는 이 책을 20여년 만에 다시 보는데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미 읽은 책을, 내가 알기론 사업체 챙기느라 글 한줄 읽기도 버거울 것 같은 이 때에 왜 읽느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내가 좀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어려울수록 고전을 읽으라는 말을 들었거든. 거기에 해법이 다 들어있다는 거야. 사실 그때마다 ‘뭔 개뼈다귀 같은 소리인가’ ‘돈 좀 버니 아는 척도 하고 싶은가보네’ 하고 넘겼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너 알다시피 요즘 어렵잖아. 나만 어렵나? 주변도 다 어려우니까 더 힘든거야. 하루가 멀다 하고 거래처는 자꾸 입금이 밀리지, 회사에서 나와줘야 할 매출은 안나오지,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한데 투자자들은 칼을 갈고 있는 느낌이거든. 그런데 어느날 서재 책장에 ‘사기열전’이 주르르 꽂혀 있는 게 보이더라고. 그 때 ‘어려울수록 고전을 읽으라’던 말이 떠올라서 빼봤는데 그날 밤을 샜다. 이게 분명 몇천년 전 얘기인데 어쩜 이렇게 쏙쏙 내 상황이 이입되냐고, 허허. 내가 요즘 이 책으로 많이 배우고 있다. 인간관계부터 이익 손실 구조까지 뭣 하나 빼놓을 게 없어. 너도 시간 나면 꼭 봐라”

선배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역사에서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비결을 배우고 있다는 것. 정말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를 등한시하는 분위기인데다 과거를 기억하고 반추해 현재를 살기보다는 과거는 깡그리 지우고 앞만 봐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는 때가 아닌가. 최첨단 기술에 현혹돼 요즘 사람들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두뇌를 가졌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다. 이런 가운데 역사는 어떤 의미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걸까.

사진=다산초당
사진=다산초당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흔한 오해와 달리 역사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현시대의 맥을 짚는 데 가장 유용한 무기이자 세상의 희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사학과를 전공하고 역사교사로 일하다 수많은 학생들에게 명강의로 유명해진 최성태의 ‘역사의 쓸모’에 나오는 문장이다. 저자는 왜 이렇게 주장할까. 애초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한가지였다. 역사를 배워서 어디에 쓰냐는 세간의 비아냥에 “역사를 공부하면 이런 것이 좋다”는 답을 써내려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쓸모’는 역사의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현명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 자부할 수 있을지를 알리고 있다. 저자가 알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특히 역사책에서 딱딱한 시간순 나열, 중요도순 설명에 따른 것이 아니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 나라를 팔아넘기고 호위호식하는 조선 엘리트와 마찬가지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던 박상진을 비교하면서 젊은 세대가 가져야 할 ‘꿈’에 대해 조언한다. 그는 박상진이 판사를 꿈꿨다면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매국노 중 한 사람이 됐겠지만 그의 꿈은 단순 명사가 아닌 힘없고 무지한 이들에게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판사라는 ‘동사적 꿈’이 있었기에 일본의 편에 서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독립운동가들을 돕는 길을 선택한 박상진이라는 사람의 인생은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극으로 끝맺음을 했지만 그의 선택을 통해 저자는 이 시대 젊은 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그 직업을 원하는지를 생각할 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역사의 쓸모’를 통해 역사의 어느 한 부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이야기들과 현대를 비교하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것인지, 시민으로서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저자는 책을 쓰며 강연자답게 대화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독자들이 더욱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접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갖도록 돕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시작에서 ‘삶이라는 문제에 역사보다 완벽한 해설서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 그대로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당장의 답은 구할 수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렇게 살지 않아야겠구나’,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의 역사를 매개로 엮어진 인문 교양서라는 점에서 독자들은 더욱 친근하고 높은 공감 속에 자신의 삶을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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