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읽기] 연극 ‘미저리’, 느슨한 서스펜스 살린 배우들의 역량 '눈길'

박희린 기자 승인 2021.01.03 09:00 의견 0
사진=그룹 에이트
사진=그룹 에이트

연극 '미저리'는 영화나 소설로 작품을 접했던 이들을 다소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 이미 2018년 한국 초연 당시에 적잖은 관객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미저리'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미저리'의 이미지를 어떻게 연결 혹은 분리 시켜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만큼 연극 '미저리'는 결이 달랐다.

소설에서 애니 윌크스가 폴 셰던을 감금하고 고통을 주는 모습을 표현한 텍스트의 묘사는 공포였다. 도끼로 발목을 자르고, 불로 절단 부위를 지지고, 전기톱을 들고 다니는 애니 윌크스의 모습은 활자에서 튀어나와 독자에게 넘치는 긴장감을 줬다. 이를 스크린으로 옮긴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 무대에 오른 연극 ‘미저리’는 밋밋했다. 초연 당시 ‘서스펜스 스릴러’라기보다는 ‘심리극’이라는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1년 3개월 만에 관객을 만난 ‘미저리’도 이러한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황인뢰 연출은 서스펜스 부분을 강조했다고 하지만, 이미 초연 때 잡혀버린 느슨함은 다시 조이기 쉽지 않았다.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른 연극 ‘미저리’에서 김상중(폴 셰던 역), 길해연(애니 윌크스 역), 고인배(버스터 역)의 연기와 합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초연 때도 이미 호흡을 맞췄던 이들은 때론 진지하게 때론 능청스럽게 극을 끌고 나갔다. 김상중과 길해연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톱니바퀴처럼 연기를 맞춰 나갔고, 고인배는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극의 흐름을 한 번씩 바꿔 놓았다. 아주 잠깐 일어난 소품을 이용한 실수은 오히려 극의 일부분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서스펜스는 여전히 약했다. 빛과 음악을 이용해 관객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자극하고, 해머와 식칼 등의 소품들로 시선을 잡기는 했다. 또 시골에 있는 애니의 집이 회전하면서 주는 강렬함도 나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연극 전체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이가 보느냐에 따라 연극에 대한 평가를 다를 수 있다. ‘미저리’를 연극으로 처음 대하는 사람은 배우들 호연과 무대 장치 그리고 다소 불편하게 보일 수 있는 몇몇 장면들로 인해 서스펜스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놔야 한다. 동급의 서스펜스를 느끼려 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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