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독서 | ③지식수집] 조선 중기의 결혼제도, 허난설헌은 왜 시집살이를 했나?
안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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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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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는 남귀여가 혼인 제도가 차츰 없어지고 친영제가 도입됐다. (사진=픽사베이)
‘초희’를 읽으면서 허난설헌을 ‘최초로 시집살이 한 여성’이라고 표현한 데는, 당대 결혼 제도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1563년~1589년까지 허난설헌의 생애는 조선 중기로 여성들은 대부분 부모가 정한 혼처에 따라 결혼을 했다. 이보다 50년 쯤 앞선 시대에 조선 최고의 화가라 불리는 신사임당이 살았다.
남귀여가가 뭐야? 신사임당 생애만 해도 남자가 여자의 집에서 혼례를 거행하고 그대로 처가에 살다가 자녀를 낳아 자녀가 성장하면 본가로 돌아오는 우리 고유의 혼인 풍속인 ‘남귀여가’가 남아 있을 때였다. 남자가 결혼을 하면 “장가 간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고려시대와 조선중기까지의 우리 고유 전통이 남귀여가였던 탓이다.
친영제가 도입된 이유 하지만 허난설헌의 생애는 친영제를 실시할 때다. 조선은 건국이후 모든 제도를 중국의 제도를 따랐는데 중국의 혼인제도가 친영제다. 허난설헌은 아직 남귀여가 제도가 남아 있을 시대에 시댁에 들어가서 살면서 인생의 비극을 맞이한다.
허난설헌 남편은 누구? 허난설헌의 남편인 김성립은 안동김씨의 자제다. 집안은 매우 대단한 문벌가족이었지만 김성립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과거도 계속해서 떨어지면서 밖으로 돌던 김성립은 아내인 허난설헌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혼 초기때부터 남편이 집을 많이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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