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가 깊어 죽을 것 같아도 잠을 잘 이루지 못했고, 다음 날이 되면 또다시 당직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꿈에서 중력이 나를 잡아 끌어내리던 순간을 몸이 기억했다. 그 느낌을 이승에서 겪게 될 때, 그때가 진정 마지막이 될 것이다. (중략) 나는 외과의사라는, 한국에 정착할 수 없어 보이는 괴이한 일을 할 때마다 나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만두지 못했고,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은 내 권한 밖의 일이었으므로, 나는 늘 진퇴양난 속이었다 –골든아워 中-
이국종은 자신의 저서 '골든아워'에서 언급한대로 흡사 전쟁터 같은 수술실에서의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는 아주대학교병원 소속의 의사이다. 외과학교실 및 응급의학교실의 교수로 재직중이며, 2010년부터 아주대학교 권역외상센터장 및 외상외과장을 겸임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국 각 지역에 권역외상센터가 설치되는데 공헌을 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외과의사 이국종은 흡사 이순신과 같다.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심각한 부상을 당한 석해균 선장을 오만에서 수술한 바가 있는 그는 ‘부상이 심하지 않은 환자를 데리고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에는 귀순한 조선인민군 병사의 정보를 과도하게 공개하여 귀순한 병사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는 김종대 의원의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국종은 의료계 내에서도 “이국종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하다”면서 “이국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를 이순신과 비교한 이유는 외부의 시기와 유명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끊임없이 필요성을 강조해 ‘닥터헬기’를 도입시킨 탓이다. 이 때문에 이국종을 ‘하늘 나는 외과의사’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국종은 미국 연수 시절, 골든아워를 지켜내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감탄하고 국내에 돌아와 응급환자 골든아워의 중요성을 꾸준히 피력해 왔다.
그 자신 또한 ‘외과’를 전쟁터에 비유하며 두 권의 책을 추천했다.
■ 무너져가는 조국 앞에 고통스러워하는 민중의 삶, ‘남한산성’
“김훈 작가에게 경외감을 느낀다”고 고백한 이국종 교수는 역시 ‘남한산성’을 추천한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생생한 소설적 상상력을 펼쳐 내는 것에 감탄했다고.
‘남한산성’은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와 당파의 다툼, 아스라이 무너져가는 조국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민중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1636년 병자년 겨울,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진격해 온다. 조선 조정은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었다. 책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을 담았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이 더 가치 있다고 주장한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일으켜 세운 이순신, ‘칼의 노래’
이국종 교수는 ‘칼의 노래’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늘 말한다. 이순신 제독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치기까지 겪은 사건들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는“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끝없이 일으켜 세운 이순신 제독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불안하고 고독한 그의 내면이 아주 몽환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라고 책을 소개한다.
실제 이 교수는 자신이 겪은 우울감에 대해서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는 2008년 영국 로열런던병원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부터 겪은 우을증에 대해 “더 이상 우울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칼의 노래’는 이 교수를 더욱 끌어당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었다고 전한다. 또한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서 소설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칼의 노래’는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의 소설이다. 한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당대의 영웅이자, 정치 모략에 희생되어 장렬히 전사한 명장 이순신의 생애를 그려낸 작품. 작가는 시대의 명장 이순신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함께 표현해내며 사회 안에서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전장에서 영웅이면서 한 인간이었던 이순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공동체와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선 이들이 지녀야 할 윤리, 문(文)의 복잡함에 대별되는 무(武)의 단순미, 40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도 달라진 바 없는 한국 문화의 혼미한 정체성을 미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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