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출신 영화감독 이창동의 소설 보는 안목
천명관 장편소설 ‘고래’
안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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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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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이 누구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이력으로 글을 보는 이 감독의 안목은 꽤 높이 평가 받는다.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영화계에서도 보기 드문 엘리트이다.
실제 그는 “소년시절에 근거 없는 엘리트 주의에 빠져있었다”라고도 고백한다. 이 감독 정서의 저변에는 경북 안동에서도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후손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방학이면 안동의 할머니집에서 머물며 자연의 풍경과 소리들을 만끽하며 지냈는데 이 때의 경험으로 미적 기준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회상한다. 이런 소년 시절의 감성은 영화감독으로서 이창동을 만들어 냈으리라 짐작한다.
이 감독은 고교 시절부터 문예반에 가입해 백일장 대회 상을 휩쓴 이력도 있다. 대학 역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하면서 문학과 그는 떼 놓을 수 없는 인생의 업이 되었을지 모른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전리’가 당선되면서 ‘작가’ 타이틀을 달게 된 이 감독은 1992년에는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소설을 보는 그의 안목은 전문가 수준이다. 그런 그에게 감흥을 준 소설이 있었으니 천명관 작가의 ‘고래’다. 천명관 작가는 영화 ‘고령화 가족’의 원작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내년에는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가히 ‘포스트 이창동’으로 지목될 만한 인물이다.
■ 오랜만에 만나는 이야기의 성찬 ‘고래’
천명관 작가의 ‘고래’는 힘 있는 소설이다. 장편이지만 단숨에 읽어 내려 갈 수 있는 것은 상식과 정석을 파괴하는 천 작가의 상상력과 필체 탓으로 돌려볼 만 하다.
‘고래’는 신화적, 설화적 세계에 가까운 시·공간을 배경으로 1부와 2부는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금복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그녀를 둘러싼 갖가지 인물 사이에서 빚어지는 천태만상, 우여곡절을 숨 가쁘게 그려냈다. 3부는 감옥을 나온 뒤 폐허가 된 벽돌공장에 돌아온 금복의 딸이자 정신박약아인 춘희의 생존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폭풍우처럼 격렬하고 파괴적인 인간의 욕망을 그린 천명관의 소설은 인물의 내면과 공간의 묘사를 배제한 채 시나리오 기법에 의존함으로써 빠른 속도로 읽힌다. 살인과 폭력, 죽음의 음산함, 전통설화의 세계, 질펀한 해학과 유장한 판소리를 연상케 하는 능란한 입담, 신파극 변사를 떠올리게 하는 과장된 감정분출과 유치한 이죽거림, 무협지나 성인만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 등 다양하고 다채로운 자양분들을 치밀한 구성으로 한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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