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발견]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살아가는 거야”?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신리비 기자 승인 2021.04.12 08:00 의견 0

‘그냥...’과 말줄임표를 남발한 작가는 그의 엉뚱하고도, 황당하고도, 유치했던 전작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나를 우울하게도, 침착하게도, 답답하게도 하며 감정의 곡선을 제 멋대로 그리고 있었다.

마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도 같고, 마치 나를 꿰뚫은 것도 같고, 마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은 그의 이야기는 흐물흐물하게 풀어져 있으면서도, 딱딱하게 날이 서 있었다.

작가 박민규가 빼앗아가는 밤과 다음날의 피로를 보상해주고도 남을 만한 택. 꾹꾹 접어가며, 어딘가에 메모하리라 생각했던 몇 글자.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살아가는거야”라는 말에 이토록 공감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어느덧 훌쩍 먹어 버린 나이 때문일까? 그 시간 동안 겪었던 사랑 때문일까? 지금까지 들어왔던 이야기 때문일까?

살아가듯이 그냥 사랑하는 게 기적일까? 사랑하듯이 뜨겁게 살아가는 게 기적일까?

수많은 물음표를 던져 놓은 한 권의 책. 책 표지가 예쁘고, 제목이 우아했지만 한 권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삶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건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꿈이기 때문이야. 좋은 꿈을 꾸기 위해 이렇듯 맥주도 마시고... 오줌은 뭐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거지, 안 그래?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꿈같은 일이란 실은 별다른 일이 아니야.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꿈같은 사랑이란 것도 별다른 게 아니지.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사랑하는 거야. 기적 같은 사랑이란 그런 거라구.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보잘 것 없는 인간과 더불어... 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줄 일도 없는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중략) 기적이란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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