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발견] “위험할 정도로 공허할 때가 늘어났을 뿐”
도리스 레싱 ‘19호 실로 가다’
신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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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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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누구에게나 19호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화두가 된 것만 봐도 대한민국 사회는 결혼한 여성의 비행을 용납하지 않기에 더욱 억압된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외국이라면 어떨까?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는 억압된 여성의 일상과 저항을 잔인하지만 다정하게 그려냈다. 책 속에서 수전과 매슈는 서로 뜨겁게 사랑했고, 결혼해서 네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아내인 수전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을 버리고 집 안에 머물러 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사랑스럽지만 수전은 공허해져만 간다. 그리고 매슈는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아내에게 털어 놓는다.
막내인 쌍둥이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 수전에게는 뜻 모를 공허함이 밀려온다. 삶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한 방황으로 끝없이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하던 수전은 끝내 혼자 만의 공간을 찾아낸다.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수전은 몇 군데 모텔을 찾아가본 결과 낡고 허름해서 손님도 없을 것 같은 모텔의 19호실을 정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잠깐의 시간 동안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을 허락 받은 그녀는 후에 남편 매슈의 외도 의심에도 결코 19호실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생환의 중심이자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헤아릴 수 없는 기쁨과 재미와 만족을 안겨줄 수는 있지만, 삶의 원천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수전과 매슈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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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고, 탓할 사람도 없고, 내 잘못이라고 나설 사람도 없고…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다만 매슈가 원하는 만큼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했을 뿐. 수전이 위험할 정도로 공허할 때가 늘어났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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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모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처음에 나는 어른이 된 뒤 1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았어. 그리고 결혼했지. 처음 인신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어. 아이들에게. 그 후 12년 동안 나는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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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은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잊지 말고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는 결코 무아의 지경에 빠질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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