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발견]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다”

‘생각이 나서’ 황경신

신리비 기자 승인 2024.01.11 10:55 | 최종 수정 2024.12.02 10:50 의견 0
(사진=신리비 기자)

생각이 나서'의 감명 깊은 구절을 일일이 소개했다가는 책 한 권을 모두 타이핑해야 할 형편이다. 월간지 '페이퍼'의 편집장으로서, 짧은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작가로서의 황경신은 무척 촉촉하고 따뜻한 감수성을 가졌다. 그녀의 책 제목은 늘 나른한 봄날 같다. -편집자주-

“제 생각엔 말이죠, 진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일 수도 있어요. 우리에게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아무리 감추어도 드러나는 것이 진실인데 이 정도 살아왔으면 그 정도는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보이지 않아서 답답한 거겠죠. 엉뚱한 걸 믿는다면 그래서 확신한다면 답답함은 없겠죠. 그러나 진실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또 한편으로 우리 안에 진실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아직 진실이 되기에는 덜 영근 무엇, 그것을 진실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요. 진실이라 믿었던 그것에 의해 상처 받지 않도록”

“사랑은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사랑은 영원히 우리를 지켜줄 만한 힘이 없다. 사랑이 우리를 지배하는 동안, 뮤즈에게 영혼을 의탁하고 우리 속에 있는 아름다운 무엇을 세상에 꺼내어 보이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다음 사랑에 의해 배신당하는 우리는 그저 뮤지의 노리개일 뿐인 걸까. 모르겠다. 그래도 '시인의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다”

“조금 두터워지고 조금 무뎌지기로 한다. 모든 말들을 일일이 다 마음에 담아두었다가는 수리가 불가능한 고장이 날 테니까. 너무 애쓰지 않기로 한다. 스물네 시간 마음을 가동시키다 보면 언젠가 바닥이 날 테니까”

“아픈 기억들은 옷장 속에 숨겨놓을 게 아니라 세상에 내놓고 비바람 맞게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토록 선명한 것들도 언젠가는 지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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