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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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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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인은 술만 마시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말한다. 요리를 즐겨하는 그는 어릴 적 어머니가 요리학교에 보내주지 않은 것을 틈만 나면 원망하곤 한다. 지켜본 바로는 장르 불문하고 어느 요리나 뚝딱, 곧잘 해낸다. 각종 요리를 어떻게 조리해야 맛있는지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은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요리사로 제 2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은 어떻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단박에 “이미 늦었어”라고 답했다. 늘상 자신이 꿈꾸던 길을 막은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정작 이제 그 길에 들어설 의지도 열정도 없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지금의 현실이 답답해서 해보는 푸념일지 모른다. 그가 요리사가 됐다면 지금과 같은 후회와 원망은 없었을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 혹은 여전한 열망, 긁어보지 못하고 버려야 했던 복권의 대박 성공률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 본 이는 없을 터다. 만약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보다 그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크다면 도전을 해봐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한가지는 꼭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래서, 그 길을 가지 않아서 지금 얼마나 불행한 거니? 만약 꿈을 좇으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가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그는 ‘빅 픽처’의 주인공 벤 브래드포드를 내세워 포기해서 서글픈 길, 가보고 나서 되돌아보게 되는 불평 불만 많았던 삶들을 조명하며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사진가를 꿈꾸던 벤은 아버지의 종용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변호사가 된 후 그 돈을 아낌없이 카메라를 사는 데 퍼붓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산다. 그러던 중 아내가 변변찮은 사진가 이웃과 외도한 것을 알게 되고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고 만다. 자살 시도조차 여의치 않은 심약한 그는 결국 자신이 죽인 게리로 다시 살기로 결심한다. 남의 눈에 띌까 전전긍긍하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못한 그는 우연한 기회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 초조하고 두렵다. 그리고 또 한번, 그의 생 앞에 반전이 펼쳐진다.
‘빅 픽처’는 벤을 통해 자기 앞의 생과 선택하지 않은 생 중 어느 것이 나을 것인지를 묻는다. 벤은 게리로서의 삶을 즐기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토록 환멸했던 변호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안락했는지를 수도 없이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을 둘러싼 몸체는 스릴러에 가깝지만 그 내면은 현재와 다른 인생을 산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꽉 차 있는 셈이다. 벤의 아내 베스는 작가를 꿈꿨지만 가정을 꾸리고 출산하며 꿈을 포기한 경우다. 삶은 풍족하지만 그는 내면을 충족하지 못하는 고갈에 시달리다 성공하지 못한 채 꿈만 좇는 남자와 외도를 저지른다. 벤의 직장에서 유일하게 그의 소울메이트가 되어주는 선배 변호사는 화가를 꿈꾸다 현실에 안주했다. 벤 역시도, 사진가를 열망하지만 번번이 아버지가 제공하는 재력과 안락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인물이었다. 모두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채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만을 열망하고 오직 그것만이 달콤한 행복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빅 픽처’는 한 남자가 살인자와 그 도피과정을 그린 스릴러보다는 한 개인의 꿈과 현실에 대해 메스를 들이대고 해부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더불어 유럽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작가의 필력이 탄탄하고 긴박한 서사 위에서 춤을 추며 독자들을 매료한다.
누구에게나 다른 인생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어릴 적 막연하게 꾸던 꿈을 이루지 못한 회한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며 부러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것이 깊고 빼내기 힘든 가시가 되어 지속적으로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면 벤의 절망과 선택의 일대기를 펼쳐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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