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길] 스스로 ‘글 잘 쓴다’고 하는 사람을 못 봤다

신리비 기자 승인 2020.11.12 09:15 의견 0
사진제공=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사를 두고 다소 특이한 표현을 쓴다. 잘 써진 기사가 있을 때 이를 ‘잘 썼다’가 아닌 ‘잘 빠졌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분명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자신이 쓴 기사인데 어떤 날은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한편 어떠한 날은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문장과 마주치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자 대부분이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이런 표현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가뭄에 콩 나듯 ‘글 잘 썼네’라고 누군가가 작은 칭찬이라도 해주면 입 꼬리는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한 없이 올라가지만 “우연히 잘 빠졌습니다”라는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반대로 상사의 지적에 숨이 턱 막히는 상황과 맞닥뜨리면 ‘나는 숨 쉬는 쓰레기인가’라는 존재의 이유를 묻고, 휘몰아치는 자책감 속에서 허우적댄다. 대다수 기자들이 그렇다. 글 좀 쓴다 하는 평가를 들으며 자라왔고, 꿈을 품었음에도 여전히 어떤 날은 기막힌 글을 써내고 어떤 날은 한줄도 풀리지 않아 흰 화면만 바라봐야 한다.

매일 쓰는 기자들도 어렵다. 글을 잘 쓰기란 ‘난제’다. 글쓰기 짬밥이 두 자릿수를 향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글쓰기 능력에 여백이 큰지라 “글쓰기 책이라도 읽어보라”는 지시를 받거나, 때로 자발적으로 사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눈에 띈 책은 ‘명사들의 문장강화’다. 국내 다양한 분야에서 글쓰기만큼은 분명히 인정받은 사람들의 ‘글 잘 빠지는 비결’이 담긴 책이다.

고은 시인, 안도현 시인, 남경태 역사학자, 김정운 심리학자, 김영현 드라마 작가 등 내로라하는 ‘글쓰기 스타’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로 모인다. 노력 혹은 정성이다. 재능을 타고났는지 모르지만, 노력과 정성을 들이지 않은 이는 없다. 좋은 글쓰기의 덕목인 ‘삼다(三多)’인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常量),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고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많이 쓰지는 않았더라도 많이 읽고, 생각하고는 누구나 했다. 그 과정에서 성장한 내면이 좋은 글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매번 책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부딪히는 힘겨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민을 거듭하다 문장가로서 명예를 얻은 것 같다. 이 삼다의 과정이 오랜 기간 누적되어 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훔치는 초능력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명사 대부분이 다 그렇더라.

보고서 하나 작성하기 어려운 회사원들, 용돈을 더 올리기 위해 부모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학생들, SNS나 온라인커뮤니티에 글 하나 쓰고 싶어도 쉽게 써내려지지 않는 문장 때문에 괴로운 네티즌들, 나를 포함해 연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좋은 문구를 남기고 싶은 숱한 솔로들, 모두 글을 잘 쓰려면 결국 많이 읽은 것을 바탕으로 자주 써보며 늘 고민해야 한다. 이 원론적인 이야기를 모르는 바 아니나, ‘명사들의 문장강화’를 읽고 더 확실해졌다. 글 잘 빠지는 비결에는 정공법만 있을 뿐 묘수는 없다는 것을.

남이 잘 닦아놓은 길에 얹어서 쉽게 가려고 했던 잡념은 이쯤에서 접어두는 게 좋겠다. 그저 오늘도 주어진 숙제를 처리하기 위해 담배 한 모금, 한 숨 한 번 뻑뻑 내쉬어가는 것을 번갈아가며, ‘글이 잘 빠졌을 때’의 희열과 마주하길 기대하는 심정으로 노트북과 대면하는 게 빠른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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