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길] 삶이란 전쟁터, 패잔병이 될 것인가 승자가 될 것인가
안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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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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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전쟁터’라는 말이 있다. 살아가기가 결코 녹록지 않다는 말도 되겠지만 그만큼 싸우는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치열한 전투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학생들끼리의 다툼, 직장인들끼리의 물고 물리는 알력 다툼, 스포츠 선수들의 승리를 위한 땀, 정치인들의 권력 투쟁까지…둘러보면 전쟁터가 아닌 곳이 없다. 모두가 전사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셈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싸움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 전쟁의 연속선상에서 승리하는 자도 있을 것이며, 패잔병도 있을 것이다. 이기고자 불같이 달려들었지만, 패배하는 경우도 있고,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걸어 나갈 때 승리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자신은 인정하지 못할지언정 모두의 눈에 승리를 쟁취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나는 승리했다고 여기지만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기고 진다는 건 무의미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사마천의 ‘사기’ 중 열전 부분은 춘추천국시대라는 혼란의 때를 살아간 인물들의 전쟁이 담긴 책이다. 당시의 승리와 패배, 굴곡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기는 기원전 100년, 중국에서 만들어진 역사 책이다. 비록 사마천 개인이 스스로 기록한 책이지만, 기전체라는 특유의 집필 방식과 그 당시 한나라뿐만 아닌 주변 나라들의 국제 정세까지도 함께 기록했다는 점, 그리고 각 역사적 사건에 사마천의 평가가 하나하나 담겨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기록물이다. 수 천 년이 지난 작금에도 여전히 숱하게 읽힌다.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뛰어난 재능으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다가 대부분 죽임을 맞이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누구하나 열거할 필요 없이, 90% 이상이 그렇게 살다 떠났다. 더 높은 곳을 향해가고자 한 인물들의 욕망이 결국 인생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월나라 구천과 20여년간 고난을 같이 한 범여만이 구천을 떠나 호상(?)을 맞이할 수 있었다. 오나라 복수에 성공한 구천을 보고 “고난을 함께할 수는 있지만 영화를 함께 누릴 수는 없는 인물”이라 냉철히 평가했기에 가능했다. 사기열전에서 유일하게 나쁘지 않은 끝을 맛본 인물이다.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멈춰야 할 때 멈춰선 유일한 인물이라고도 평할 수 있다.
과연 범여의 경지는 어디까지 올라섰던 것일까. 오나라에 복수한 월나라의 2인자 위치에서 모든 걸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었을까. 그러면서 나는 범여처럼 욕심에서 자유로이 살아가고 있는가 되묻게 된다. 타인에게 기대라는 포장지로 나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는 않는가. 조금만 더 높은 곳, 조금 더 나은 나를 위해 무리한 욕심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가. 올라가는 만큼 희생이 필요한 터인데, 그만큼 희생하고 있는가 등등의 질문이 떠오른다. 답은 부끄러워서 나오지 않는다.
몇 년 안 살아봤지만 누군가의 욕심은 ‘모난 돌’처럼 톡 튀어나온다. 정확하게 보인다. 내 눈에도 이러한데 내 욕심이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결국 이 욕심을 다스리는 것이 성숙한 인간으로 향해가는 묘수로 보인다.
욕심을 다스리기란 쉽지 않다. 인간에게 주어진 인정의 욕구가 안정적으로 채워졌을 때나 가능하다. 누구나 인정받기 위해 살아간다. 인정이 채워지면 행복하고, 심히 부족하면 불행함을 느낀다. 부족한 인정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인정받으려 자칫 잘못된 술수를 부리다 들키기라도 한다면, 아마 ‘모난 돌’처럼 정에 맞게 될 것이다. 그러면 더 큰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다.
스스로 인정하는 것. 스스로 기특하다 여길 정도의 노력을 하는 것. 그로 인해 타인의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것. 욕심 없이 대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 그러면서 욕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범여처럼 산다는 건 이정도의 경지까지 올라서야 가능한 것 아닌가 싶다. 평범한 나로서는 멀리만 보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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