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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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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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서점가뿐 아니라 영화계에도 파란을 일으켰던 조남주 작가의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다. 남영동으로 짐작되는 서영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점에서 기술한 단편소설들이 흡사 아파트처럼 층층이 쌓여있는 듯 느껴지는 소설집이다. 층층이 쌓인 동네 사람들 이야기가 아파트가 되고, 다시 동네가 되어 서영동이라는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이 주택가 동네를 선연하게 그려낸다.
저평가 된 동네 아파트 가격이 불만이면서도 전세살이 하는 이웃 앞에서는 선뜻 집값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매매가를 올려보겠다고 강남 부동산에 집을 내놓는 사람들, 퇴직 후 아들이 아들을 돌보기 위해 경비업무를 자청한 할아버지가 경고맨이 된 사연, 돼지엄마가 되어 동네 교육의 선봉에 선 이지영의 과거 등등 책에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들이 저마다 가해자가 되고 또 피해자가 되어 엉켜있다
누구를 욕할 것이며 누구를 손가락질 할 것인가. 그 손가락 끝에 걸린 누군가는 또 나이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책 속 사람들의 살이가 너무나 서울살이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을 주는 것은 마지막 챕터 '이상한 나라의 엘리'다.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오롯이혼자 버텨내야 하는 삶에 누군가의 친절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려움에 처했어도 어렵다고 말하지 못하는 엘리는 늘 웃는다.
혼자이면 외로운가? 슬픈가? 불행한가? 잘 모르겠다. 아영은 가족들과 함께 살 때도, 친구가 많을 때도, 동료들과 매일매일 바쁘게 지낼때도, 뜨거운 연애를 할 때도 자주 외롭고 슬프고 불행했다. 혼자라서가 아니라 그저 세상이 너무 퍼석할 뿐이다.
퍼석할 뿐인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아영은 그래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도, 우울할 때도, 불안할 때도 그 감정을 들키는 일은 위험하다고 생각했기에 늘 여유있고 쾌활한 척 생각하고 행동해왔다.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집주인의 갑작스러운 이사통보에 거처를 잃고 무작정 짐을 싸서 나온 아영은 아르바이트 중인 학원에서 잠을 해결하던 차에 원장의 도움을 받는다. 아영은 원장이 자신을 왜 돕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원장은 말한다. 젊은 사람이 고생하는데 도와줘야 한다고...
모두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자기 것을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에 이처럼 자기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 낯설다. 왜 손을 내미는 것인가, 왜 돕는 것인가, 대가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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